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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 <14> 녹동 오일장- "생선에 간이 들면 건어물이라는 작품이 된다"
명절이나 집안의 제사 때 주문해가는
고객들이 가게마다 단골이 되고,
한 번 주문해본 사람들은 평소에도
생선반찬을 위해 녹동시장의
건어물가게를 찾는다.
작품으로 완성된 녹동시장의 건어물은
강원도로, 경기도로, 서울로 팔려나가
입력시간 : 2018. 06.22. 00:00


녹동시장에서는 '생선'이라는 물감에 간을 더하여 '건어물'이라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아 주문을 받은 뒤 택배로 보내준다. 제수용품은 물론 탕으로, 찜으로, 구이로 식탁에 오른다.
◆녹동시장은 녹동읍에 없다

장터는 조촐했고 일상처럼 무심했다. 알지 못할 들뜸도, 종종걸음의 분주함도 없었다. 찔레꽃머리를 갓 지난 유월의 햇살만이 장터에서 홀로 빛났다.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그 스산함을 어찌 감당했을까 싶다.

녹동오일장은 고흥군 도양읍의 읍장이다. 외지인들은 장의 이름을 보고 녹동읍에 속한 장으로 흔히들 생각한다. 하지만 고흥군에 녹동읍은 없다. 항구도 녹동항이고, 버스터미널도 녹동버스공용 정류장이다. 학교도 녹동초등학교이고, 파출소도 녹동파출소이지만 모두 도양읍에 속한다. 도양이라는 이름은 읍사무소나 우체국, 119안전센터로 개명된 소방서 등 일부 쓰일 뿐이다.

도양이라는 지명이 왠지 녹동과는 별개일 것만 같은 녹동오일장을 찾는 날은 지방선거가 있던 지난 13일이었다. 아침 일찍 아파트에 마련된 투표소에 들려 '주권'을 행사한 뒤 녹동항의 푸드덕 거리는 생선을 그리며 장을 찾았다.

하지만 녹동에 녹동읍이 없듯이 녹동시장에 푸드덕 거리는 생선은 없다. 항구의 시장에 생선이 없다면 시장의 정체성을 찾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매 3일과 8일에 열리는 녹동오일장은 상설시장과 겸하고 있어 여느 전통시장 못지않게 물건과 사람들로 가득찰 것으로 여겼으나 이 또한 깔끔하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연재물을 '전회와 동일'이라고 쓸 수도 없는 일. 난감한 마음으로 무작정 시장 안을 몇 바퀴 돌았다.

녹동항 활어 회 센타에서 파는 감성돔과 우럭. 포장하여 인근의 방파제에 앉아 고흥유자막걸리와 곁들이면 영화의 한 장면이 따로 없다.


◆건어물은 간이 맞아야 으뜸

그 때였다. 주차장과 인접한 시장 외부의 건어물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건어물가게는 십 수 개가 넘어 성벽처럼 시장의 외벽을 차지했고, 가게 앞에는 오와 열을 맞춘 병사들처럼 가지런히 누운 생선들이 초여름의 햇살에 적당히 말라가고 있었다. 돈오(頓悟)였을까. 녹동시장의 가장 큰 장점이자 여느 시장과 다른 차별성이 햇살에 말라가는 생선에 있었다.

건어물가게의 냉동고에는 장어, 민어, 조기, 부서, 우럭, 돔, 갈치, 낙지, 문어, 능성어, 병어, 갑오징어, 간재미, 장대라고 불리는 양태와 박대라고 불리는 서대 등 온갖 생선과 바지락이나 홍합, 굴 등이 가득했다. 고깃배들이 먼 바다에서 잡은 선어가 대부분이나 더러 어종에 따라 수입한 중국산 선어도 녹동시장 건어물가게의 냉동고로 들어갔다.

이들 건어물은 무게와 크기에 따라 각기 다른 가격으로 팔리는데 현장판매보다는 주문에 따른 택배가 더 많다. 명절이나 집안의 제사 때 주문해가는 고객들이 가게마다 단골이 되고, 한 번 주문해본 사람들은 평소에도 생선반찬을 위해 녹동시장의 건어물가게를 찾는다. 다른 지역의 건어물에 비해 간이 잘 맞는 탓이다.

간은 소금의 양만으로 맞출 수 있는 정량적 수치가 아니다. 햇볕과 바람과 사람의 정성이 함께 조화를 이뤄 빗어낼 때 간은 작품이 된다. 작품으로 완성된 녹동시장의 건어물은 강원도로, 경기도로, 서울로 팔려나가 구이나 찜, 또는 찌개용으로 형태를 달리한다.

어린 시절, 말린 생선을 쌀뜨물에 뽀얗게 끓여내 밥상에 올려주던 어머니의 손맛이 햇살에 말라가는 건어물 위로 겹쳤다. 살짝 매큼하면서도 말린 생선의 깊은 맛이 우러난 국물과 국물에 풀리기를 거부한 채 입안에서 씹히는 육질의 식감은 최고의 작품이었다. 생선이 물감이라면 건어물은 작품인 셈이다.

올해 마늘농사는 제법 만족스러운 편이나 양파는 과잉생산으로 헐값이다.


◆장어를 어떻게 먹을 것이냐가 고민

시장을 몇 바퀴 둘러본 뒤 보충취재를 위해 상인회 회장을 찾았다. 회장 역시 건어물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자리를 비웠고 그의 부인인 진희숙(58) 사장이 바지락을 손질하다 말을 받았다.

진 사장은 농번기철인데다 바로 2-3분 거리의 녹동항에 활어 회 센터가 따로 있어 시장을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시장이 한산한 이유와 푸드덕 거리는 생선이 없는 이유에 대한 진단이다.

진 사장은 찬바람이 날 때 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거라고 했다. 겨울철은 지금과 달리 고흥의 대표적 브랜드인 유자가 나오는 철인데다 매생이와 굴이 많이 나와 시장이 풍성하고 볼만하다는 설명이다.

진사장의 부부가 운영하는 평화건어물가게에서는 반건조 국내산 장어 5마리 한 상자를 5만원에 팔았다. 마리당 1만원으로 크기가 60센티 가량이다.

이 곳에서도 낙지, 문어, 갈치, 서대, 민어 등 여느 건어물가게와 다름없이 각종 어물을 취급했다. 어물뿐만 아니라 썰은 미역과 미역줄기, 염장 미역, 구운 김, 생김, 김밥용 김. 김자반 볶음, 쌈 다시마, 멸치, 디포리 등을 함께 팔았다. 가격은 철마다 또는 물때와 시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고 했다.

진 사장은 "녹동에서는 득량만의 장어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며 "장어탕을 먹을 것이냐, 장어구이를 먹을 것이냐, 아니면 장어 샤브샤브를 먹을 것이냐 하는 메뉴 고민이 힘들 뿐이다"고 말했다. 진 사장은 "장어요리를 먹으려면 녹동항 쪽의 장어의 거리를 가라"며 장어구이 식당과 장어탕, 장어 샤브샤브식당 등 메뉴별 맛집을 따로따로 소개해주었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녹동 홍갓


◆홍갓은 고향의 맛

'평화'라는 상호를 공유하는 옆집 평화식품 가게에는 녹동에서만 나온다는 녹동 홍갓과 녹동열무가 전시물처럼 좌대에 올랐다. 짙은 자주색의 홍갓은 여수 돌산갓에 비해 톡쏘는 매운 맛이 훨씬 강하다.

평화식품 송학종(48) 사장은 "어릴 적 홍갓을 먹고 자란 고흥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서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고흥사람들에게 녹동 홍갓은 고향의 맛이다. 홍갓이나 열무로 만든 김치를 주문하면 김치를 담가서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고흥은 갓이나 열무 이외에도 밭마늘로 유명한 곳이다. 햇마늘을 사기 위해 새식품가게 앞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발길을 세웠다.

시어머니가 껍질을 벗기지 않은 햇마늘이 담긴 그물 망태를 들어보더니 "겁나 가볍네~"라며 다시 내려놓았다. 시어머니가 이번에는 다른 망태를 들고 "이건 덜 가볍네"라고 했다. 시어머니의 손은 저울추보다 정확하다.

곁에서 지켜보던 며느리가 '덜 가벼운' 마늘 한 망태를 산 뒤 식품가게 주인 할머니에게 택배를 부탁했다. "이따 내다보고 있을랑께 출발함시로 전화주시오"

식품가게 주인 할머니가 "양파는 안사? 하나(한 망태)에 오천 원 밖에 안 해"라며 값이 싼 양파도 함께 살 것을 권했다. "작년에는 양파 값이 비쌌거든. 올해는 양파를 몽땅 심었는데 배러 부렀어" 할머니의 부연 설명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양파가 꼬막만하네. 저거로 김치 맨들까"라고 물었고, 며느리는 대꾸 없이 5천원을 더 건넸다.

녹동 열무.


◆행복을 팝니다

전통시장의 입구에는 화훼노점상이 있기 마련이다. 화훼노점상의 꽃들은 계절을 앞질러 온다. 겨울날의 손님은 새봄이 그리울 테고, 봄날의 손님은 여름 꽃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케팅의 일환이겠지만 계절을 앞질러 온 꽃은 반갑다.

녹동오일장에도 시장 입구 주차장 한 쪽에 김윤양(58)씨가 운영하는 화훼 노점이 있고 노점의 화분에는 국화가 벌써 노랗게 피었다.

사연 없는 숨탄것이 있겠는가마는 꽃은 김 씨에게 생명의 힘이다. 김 씨는 원래 보성에서 유명한 식당을 운영했다. 그런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녀에게 40대 후반의 어느 날 암이 찾아왔다. 암수술을 다섯 차례나 했다.

집안에서 온 종일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던 김 씨는 꽃을 들고 일어섰다. 어릴 적부터 밥은 안 먹어도 괜찮지만 꽃이 없으면 못 살 정도로 꽃을 좋아했던 그녀는 활동을 겸해서 좋아하는 꽃을 들고 시장으로 나왔다. 꽃이야 팔리면 좋고, 안 팔려도 어쩔 수 없지만 그녀의 곁에 항상 꽃이 있어 마음이 즐거웠다. 즐거움에 빠져 보성장, 고흥장, 과역장, 동강장, 녹동장 등 다섯 군데의 오일장을 찾아다닌다. 이제는 건강을 되찾고 재발우려의 시간도 거뜬히 이겨냈다.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김 씨의 깨달음이다.

젊은 부부가 김 씨가 키워낸 노란 국화꽃 화분 앞에 섰다. "엄청 이쁘잖어! 오 천 원이면 집안에 행복이 가득해져요" 김 씨의 말에 젊은 부부가 집안 가득한 행복을 5천원에 샀다.

그때 헬멧을 쓴 진희숙 평화건어물가게 사장이 스쿠터를 타고 급하게 필자를 찾아왔다. 진 사장이 '고흥유자 동동주' 한 병을 내밀었다. "나와는 상관없지만 우리 고흥유자 동동주가 참 맛있어요. 잡셔보시고 홍보해주시오." 화훼노점상의 수레에 있던 꽃 피운 막실라리아가 은은한 커피 향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아~맛나!'- 녹동항 회타운과 '장어의 거리'

녹동시장과 인접하고 소록도 바로 앞에 있는 녹동항 주변에 '장어의 거리'와 회타운이 함께 있다. 회타운에는 청정해역 득량만에서 건져 올린 값싸고 싱싱한 장어와 우럭, 돔 등은 물론이고 낙지와 문어, 소라, 개불 등이 풍성하다. 2인기준 3만원이면 넉넉하다.

회는 포장하거나 2층 상차림 가게에 가져가서 먹을 수도 있다. 날씨 화창한 날에는 녹동항 부근의 벤치에 앉아 바닷바람을 쐬며 고흥유자 막걸리에 회 한 점 얹는 것도 썩 괜찮은 운치가 된다.

'장어의 거리'에는 장어를 이용한 구이와 탕, 샤브샤브를 하는 식당들이 많고, 각종 생선구이집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어느 식당을 이용해도 득량만의 맑고 힘찬 기운을 맛볼 수 있다.모두 먹을 수 없으니 메뉴 선택의 고민만 하면 된다.

화훼노점의 때 이른 국화가 반갑다.


취재후기

녹동시장은 많은 강점에도 불구하고 먹거리코너가 없다. 먹거리코너는 면단위까지 파고들고 있는 대형할인마트와 경쟁할 수 있는 전통시장만의 특징이라는 측면에서 이는 한계를 드러내는 취약점이다. 녹동시장과 인접한 녹동항에 장어 등 생선요리 식당과 횟집이 즐비한 탓이다. 소록도 등을 찾는 관광객들을 시장으로 유인할 수 있는 정책과 예산투자가 필요하다.

고흥군은 지난해부터 고흥시장에 대해서는 '생선구이'로, 녹동시장에 대해서는 '건어물'로 브랜드가치를 높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체감하기에는 미흡하다. 관광버스가 시장을 경유토록 한다는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녹동시장에 인접한 수협 건어물유통센터와 경쟁하기도 버겁다.

녹동시장의 일정구간 아케이드 지붕이 검정 비닐로 덮여 있는 것도 시급히 개선해야 할 현안이다. 햇볕이 들지 않아 시장의 분위기가 어두침침하여 제품의 선명도마저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와함께 비가림막 설치 등 전통시장의 핵심인 노점상을 위한 대책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시장을 둘러본 뒤 소록도와 이순신 휘하 장수인 정운장군과 녹도만호 송여종을 기리는 '녹도진성지'도 찾아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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