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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15>진도읍 조금시장
길가 돌멩이도 ‘진도’를 만나면 특별한 고유명사가 된다
입력시간 : 2018. 07.20. 00:00


조금시장은 진도관내 도서주민들이 나들이 겸해서 주로 찾는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장은 길 따라 이어지고, 이어지는 길에서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팔 듯 안부를 주고받았다.
지루한 장마가 오가는

7월 초의 무더운 날에 남동교 위에

자리 잡은 붕어빵 장수는

팔리지 않는 붕어빵 대신

안부를 팔았다.

 

노점 30년이면 이골이 날만도 한데

할머니는 장날이 제일 기쁜 날이라고

했다. "장에 나오면 용돈도 벌고,

아자씨같은 사람도 만나고

얼매나 좋아"



박 사장은 "포유동물인 돌고래도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먹을 만큼

진도곽은 그냥 미역이 아니라 약이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우무 냉채의 맛을 모른 채 할 만큼

강심장이 못됨을 어찌 하겠는가.

한 모에 3천원이다.

저녁 식탁에서 반세기 전의 입맛이

되살아나길 바랐다.



◆안부를 파는 붕어빵 장수

진도읍장의 이름은 조금시장이다. 해남의 '고도리시장'처럼 시장 이름이 생뚱맞은 이미지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한자로 쓰면 '조금'이 비약적으로 확대된다. '억만금', 즉 '兆金'이다. 금덩어리가 억의 만 배나 쌓여 있는 땅에 장이 섰다.

시장이 위치한 조금이라는 마을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조금리에 건널목이 있었는데 조수가 가장 낮은 '조금'때는 나룻배를 타지 않고도 건널 수 있다 하여 조금리라 했다." 향토사학자 김정호의 설명이다. 조금이 '황금'에서 '물 때'로 바뀌지만 조금시장은 조그맣지 않다. 매 2일과 7일에 서는 조금시장은 진도의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진도 서북쪽의 쉬미항으로 흐르는 실개천을 가로지르는 남동교가 시장의 들머리와 날머리를 겸한다. 장은 남동교에서 부터 진도군청으로 이어지는 길을 거슬러 오르며 이리저리 길 따라 펼쳐진다. 장의 중심에 광장처럼 둥그런 장터가 있으나 장터가 길이고, 길이 장터다. 사람들은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팔았고, 길에서는 안부를 주고받았다.

장마가 오가는 7월 초 장터는 찌듯이 무더웠다. 남동교 위에 자리 잡은 트럭 노점의 붕어빵도 더웠다. 여름날엔 붕어빵보다 안부가 더 반갑게 팔린다는 것쯤은 그도 안다. 붕어빵 장수는 팔리지 않는 붕어빵 대신 안부를 팔았다.

일흔을 훌쩍 넘긴 듯한 노부부가 아로니아 묘목 몇 그루를 낡은 승용차 트렁크에 실은 뒤 차의 시동을 켰다. 노부부는 자동차 유리 창문을 내리고 건너편의 붕어빵 장수에게 "나, 가네!"라고 작별했고, 역시 노부부만큼이나 늙은 붕어빵 장수는 "잘 들어가시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서로는 다음 장에서도 서로를 볼 수 있길 바랐다. 그들의 인사는 "다시 보자"는 기약의 언어가 되어 서로를 오갔다. 늙어간다는 것이 기약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희망이라 하더라도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의 입술을 어찌 멈출 수 있겠는가. 남동교 아래로 실개천이 흘러 바다로 갔다.

조금시장의 중심광장. 섬인가 하면 뭍이고, 뭍인가 하면 섬인 진도의 특성에 따라 수산물과 농작물이 가득하다.


◆할머니도 어쩌지 못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아로니아 묘목 상 옆에서는 젊지도,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중년의 사내가 여름 이불을 팔았다. '물 빠지는 중국산이나 수입산이 아닌 메이드 인 코리아. 백 프로 국내 공장에서 제작한 여름이불. 한 장에 만원씩.' 노점상의 스피커에서 강조하는 '믿음'과 '저렴'에 이끌려 길을 가던 할머니 세 분이 발길을 멈췄다. 저마다 두 개도 사고 세 개도 샀다.

허리 굽어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메이드 인 코리아' 이불이 담긴 검정 비닐봉투 3개와 함께 다리 난간에 기대어 남고, 이불 봉투를 맡긴 나머지 두 사람은 시장 안으로 스며들었다.

"열 한 시 반 배 탈라면 얼른 댕겨 와~" 남겨진 할머니가 장을 보러 가는 일행의 등 뒤로 출항 시간을 당겨 쏘았다. 인근 섬에서 장보러 왔다는 말일게다.

"할머니, 어디에서 오셨어요?" "조도"

"할머니는 다른 것은 안사세요?" "저기 가는 사람들한테 고등어 좀 사오라 했어"

"할머니는 왜 안가세요?" "다리 아파서 많이 못 걸어"

"이불을 많이 사셨나 봐요?"

할머니가 대답을 끊고 처음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아자씨는 뭐한 사람이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안다. 할머니가 낯선 이의 직업이 궁금해서 물어 본 것은 아니다. 경계이자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뜻이다. 장터를 취재해오면서 쌓은 경험칙이다. '장 구경 왔다'는 말을 남기고 그만 일어서야 할 때다.



◆기쁜 우리 장날

조금시장에서는 어물전의 냉동 고등어가 인기다. 다른 어물에 비해 값이 싸기도 하지만 현지 노인들이 주 고객인 탓이다. 외지인이나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우럭이나 돔, 간재미, 장어 등은 도서지역 주민들이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생선이다. 굳이 장날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앞 바다에 나가 잡을 수도 있고, 필요할 때마다 살수도 있다. 하지만 앞 바다에서 잡히지 않는 고등어는 장날에 사야 제 맛이다.

냉동고등어는 2손에 1만원이다. 가게 주인이 '대가리를 잘라 줄 까요?'라고 물은 뒤 익숙한 솜씨로 손질해 주면 할머니의 머릿속에서는 고등어가 벌써 노릇노릇 익어간다.

어물전의 한 쪽에서는 노점 할머니가 모시조개와 고둥을 한 바가지씩 앞에 놓고 지나는 사람과 눈을 맞췄다. 조개껍질의 윤기 나는 까만 빛깔이 곱다.

"배고파서 못 있겠다"며 "떨이로 오 천원에 가져가라"고 했다. 직접 캐고 잡은 조개와 고둥을 팔기위해 새벽 4시 반에 시장에 나왔다고 했다. 얼마만큼의 조개와 고둥을 가져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바가지에는 고둥과 조개가 대충 50여개씩 담겼다.

이런 순간에 고향의 노모가 생각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저만큼 떨어진 튀김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튀김과 순대를 포장하여 '배고파서 떨이 한다'는 할머니 앞에 앉았다.

진도읍 수유리에서 온 조영림 할머니(80)는 완도에서 스무 살에 시집온 뒤 30년째 시장에서 노점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아들딸 다 키워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 용돈이나 줄 겸해서 장에 나온다고 했다. 노점 30년이면 이골이 날만도 한데 할머니는 장날이 제일 기쁜 날이라고 했다. "장에 나오면 용돈도 벌고, 아자씨같은 사람도 만나고 얼매나 좋아"

돌고래도 새끼를 낳은 뒤 먹는다는 돌미역.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돌고래도 알아주는 돌미역

대롱이라고도 불리는 모시조개를 떨이하여 일어서려는데 마침 대여섯 살 남짓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아낙이 남은 고둥마저 떨이했고, 할머니는 꼬마 사내의 작은 입에 순대 한 점을 넣어주었다. 따끈한 순대의 맛이 꼬마 사내의 기억 속에 '엄마 손잡고 갔던 전통시장의 맛'으로 새겨지는 순간이다. 어른이 된 우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남동교 건너편 '진도읍 조금시장' 간판이 내걸린 시장 입구에서는 박규남 사장(55)이 노점 아닌 노점상을 하고 있다. 번듯한 별도의 가게가 있으나 장날에는 장터에 나와 노점을 한다. 진도에서 나오는 건어물과 특산물을 판다.

그의 노점에는 돌미역과 다시마, 톳, 김, 멸치 등 진도산 건어물들이 가득 쌓였다. 넓게 보아 진도산이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행정구역상 진도군에 속한 조도군도 일대에서 나온다.

산모미역으로 더 잘 알려진 돌미역 진도곽은 상품 한 가닥에 6만원을 호가했다. 더러 20가닥인 한 뭇 단위로 사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한 두 가닥씩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박 사장은 "포유동물인 돌고래도 새끼를 낳은 뒤 미역을 먹는다"며 "진도곽은 그냥 미역이 아니라 약이다"고 했다. 그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의 자랑은 돌미역 옆에 놓인 멸치로 이어졌다. "진도 멸치도 조도일대에서 나오는데 타 지역과 달리 단맛이 난다. 생산량이 많지 않은데다 인기가 높아 생산자가 직거래하거나 비싼데도 목포 위판장에서 팔면 끝이다. 광주까지도 안 간다"고 했다. 박 사장의 자랑은 다시마나 톳으로도 옮겨갔고 '엄지 척'은 긍지가 되었다.

남동교 위 이불 노점상에서 '조도에서 배타고 왔다'는 할머니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 여름이불을 두 세장씩 골라 담았다.


◆우무냉채를 기억하시나요

조금시장의 두 세군데 있는 손두부 노점에서는 두부와 도토리 묵 이외에도 '우무'라고 불리는 묵도 함께 팔았다. 여느 시장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묵이다.

우무는 우뭇가사리를 물에 넣고 끓인 뒤 물기를 빼고 그대로 두면 두부처럼 응고 되는 묵이다. 칼로리가 낮아 곤약과 함께 대표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 꼽힌다. 묵 아래에는 '제주도 돌팍우무'라는 원산지 표시 글씨가 함께 붙었다. 콩국이나 무침, 또는 냉채로 요리해 먹는다. 건강과 다이어트 바람에 힘입어 최근들어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우무 냉채의 맛을 모른 채 할 만큼 강심장이 못됨을 어찌하랴. 한 모에 3천원이다. 저녁 식탁에서 반세기 전의 입맛이 되살아나길 바랐다.

진도에서는 '조금'보다 많은 보통명사들이 '진도'라는 지명을 만나 특별한 의미가 되고, 고유명사가 된다. 울금, 구기자, 미역, 홍주, 아리랑, 강강술래, 씻김굿...

진도에서는 개도 '진도'를 만나면 '진돗개'가 된다. 시장의 한 편에서 강아지를 팔았다. 누렇고 까맣고 하얀 털의 고만고만한 강아지들이 철망 밖의 시장 구경에 빠졌다.

암수의 성별과 체형, 혈통 등에 따라 3만원에서 30만원까지 가격은 다양했다. 물론 공인된 진돗개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혈통보존을 위해 엄격히 관리되고 있다. 족보라고 할 수 있는 혈통서와 함께 진도군에서 발행하는 반출허가증이 있어야 가능하다.



시장의 진돗개는 일반 농장에서 키운 것으로 비공인이다. 그 중 호피라고 불리는 검은 털과 누런 털이 섞인 강아지 한 마리를 가리키며 "이게 제일 좋아 보인다"고 했다. 귀까지 쫑긋하게 서있는 강아지였다. 하지만 웬걸. 건너편에 심드렁히 앉아 있던 주인아주머니로 부터 "그게 제일 싸요"라는 말이 되돌아 왔다. 호피 고 녀석이 낄낄대며 웃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장은 12시가 되어가면서 파장 분위기가 완연했다. 앞치마를 두른 어물전의 아낙이 팔다 남은 생선의 내장을 제거한 뒤 소금 간을 하고, 잡다한 가정용품을 수레에 싣고 다니던 중년 사내는 수레를 멈추고 오른 손으로 왼손에 쥔 지폐를 세었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일장일품(一場一品)



진도곽이나 산모미역으로 불린다. 조도군도 일대에서 나오는 자연산 돌미역을 일컫는다. 영양가가 높을 뿐만 아니라 약성까지 뛰어나다. 그 중에서도 독거도 돌미역을 최고로 친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조도군도 일대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청정해역인데다 수온이 차고 물살이 거센 탓이다. 생장속도가 느려 여름 한철 수확한다. 바위에서 채취하기 때문에 미역귀가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지역의 미역과 달리 삶거나 건조기를 이용하지 않고 생미역 그대로 햇볕과 해풍에 말린다. '소뼈는 물러져도 진도곽은 안 물러진다'는 말이 있을 만큼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끓일수록 미역 자체에서 곰국 같은 깊은 맛이 우러난다. 첫물보다는 두 세 번째 끓인 미역국이 더 고소한 이유다. 소고기 대신 농어나 돔 등 지방이 적은 생선을 넣어 함께 끓이면 풍미를 더한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에 볶은 뒤 물을 넣고 1시간 이상 끓여야 제 맛이 난다.



취재후기



시장의 중심광장에 주점과 식당이가 둘러섰지만 장 보러 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외지 관광객을 불러 들일만한 많은 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강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돌미역이나 톳 등 청정해역의 해산물, 간재미와 숭어 등 값싸고 맛있는 생선, 대파나 울금, 구기자 등을 활용한 메뉴개발 등이 이뤄진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조금시장 인근에 있는 수산시장과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도 시급해보였다.

또 주변 상인들은 시장의 상가건물을 임대한 사람들이 영업을 하지 않으면 회수하여 희망자에게 재분양 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군의 값싼 임대료를 악용하여 장기간 그대로 소유함으로써 오히려 시장을 침체케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금시장은 지난 6·13지방 선거 때 출마자와 정당관계자들이 없는 문턱마저 닳을 만큼 번질나게 찾아왔던 곳이다. 하지만 선거는 끝났고 그들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조영석        조영석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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