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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진의 홀로코스트 여행(上)- 평화로운 풍경 너머 어린 뜨거운 기억, 기억이 불러낸 인류애
입력시간 : 2018. 08.17. 00:00


성 이슈트반 대성당
 8월1일은 폴란드 국가기념일로 바르샤바 봉기를 기념하는 날이다. 바르샤바 봉기는 1944년 8월 1일부터 63일간 계속된 독일 항거운동으로 2차 세계대전 역사상 가장 큰 저항운동이다. 봉기에 참여한 폴란드군 약 1만 6천명과 시민 15만명이 희생됐다. 봉기를 전후해 도시 전체가 파괴되다시피 했다.인근 헝가리 역시 2차 대전때 나치에게 목숨을 잃었다.동유럽 민주화의 물꼬를 튼 부다페스트는 그 꿈을 위해 지식인과 시민등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제국주의에 항거한 헝가리, 폴란드 국민의 정신과 이후 희생을 기리는 방식은 광주민중항쟁과 향후 광주가 전개할 기억의 방식에 많은 시사점을 줄것으로 기대된다. 광주교육대 김덕진 교수가 바르샤바 봉기 기념일 즈음 이 일대를 다녀왔다. 김 교수의 글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 주

 

 

 

◆설레는 유럽 가족 여행

 퇴근해서 집에 오니, 아들이 시간을 도저히 낼 수 없다고 했다. 한 순간에 아내와의 사이에 냉기가 돌았다. 가족 단톡방에 급히 톡을 올렸다. "한 사람을 빼고 갈 수는 없다. 취소하든가, 아니면 일정을 줄여 같이 가는 방법을 찾자" 약간 화난 투의 글이었다. 다음날 서울에 있는 아들과 딸로부터 톡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론은 아들은 여행갈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자기 빼고 갔다 오라는 것이고, 딸은 모처럼 연차까지 내서 준비한 것이니 오빠가 허락하면 강행하자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아쉽지만, 전체 여행은 후일을 기약하고 강행하기로 결론을 냈다.

 비행기표 매입과 호텔 예약 등 준비는 딸이 했다. 난 일부러 뒷짐만 쥐고 있었다. 물론 경비는 대부분 내 주머니에서 나갔지만. 목적은 가족의 힐링 여행이다. 역사학자의 답사가 아니라는 점을 독자 여러분께서 감안하시고 이 글을 보시면 좋을 성 싶다. 쉽게 풀어서 가정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아주라는 취지의 말이다. 7월 28일 밤, 터키 이스탄불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여 시간 이상 비행 끝에 공항에 내렸다. 우리보다 시차가 늦기 때문에 이른 아침이었다. 환승을 위해 부스스한 눈으로 면세점을 돌며 시간을 때웠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가족회의에서 일부러 내가 집어넣은 코스이다.

다뉴브 강의 야경.


◆남 일 같지 않은, 홀로코스트 박물관

 생애 처음 발을 밟은 헝가리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시내의 모습은 한 때 공산국가였다는 사실이 좀 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도로 위 전차, 그리고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 또한 여유스러운 헝가리 사람들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우리의 첫 '답사'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센터'였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에 캐리어를 끌고 찾아갔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아빠는 맨 날 이런 데만…" 늘 들어왔던 불평을 외국에 와서까지 또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자인한다. 들어도 싸다고.

 정문 같지 않은 정문을 어렵사리 찾았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것 같았다. 매표원의 '검문검색'이 철저했다. 이름이 빽빽이 새겨진 야외의 벽면이 우리를 처음 맞이했다. 희생당한 분들에 대한 추모벽임에 분명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10미터 정도 되는 좁은 골목길 같은 곳을 통과했다. '저벅저벅' 소리가 들렸다. 진흙길을 장화를 싣고 힘없이 걷는 소리로 판단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했지만, 헝가리 사람과 유대인들의 고난의 발걸음으로 기획되었음을 금새 알아차렸다. 이를 안 순간 내 몸은 즉각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무거워지는 그 느낌을 말이다.

바르샤바 봉기를 기념하는 기념물


 바로 이어 본격적인 전시물과 접하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군에 의해 자행된 만행과 그에 협조했던 헝가리 사람들에 관한 전시가 주였다.

 그것을 가족과 개인의 이야기 중심으로 풀어갔다.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온다면 참고할 만한 아이디어이다. 그들의 광적인 만행이 1944년에 극에 달했다고 적혀 있다. 그때 우리도 그랬다. 우리 가족의 발걸음을 붙잡은 곳은 5분 정도의 영상을 반복적으로 틀어주는 곳이었다. 굶주림, 방치, 학대, 그리고 총칼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과 수 없이 죽어 있는 시신, 그리고 그 사람과 시신을 아무 감정 없이 태연하게 대하고 처리하는 독일군과 그 부역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 놈들에게' 죽은 자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냥 하찮은 잡물에 불과한 존재였다. 그 영상을 난 세 번이나 보았다. 이국이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헝가리 말이지만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1935년에 태어난 Mozes 가족의 유대인 쌍둥이 자매에 관한 영어 이야기를 읽은 후 우리는 건물을 빠져 나왔다.

박물관 앞에서 필자


 말로만 들어왔던 홀로코스트 문제를 나에게 생애 처음으로 보여준 의미 있는 곳이었다. 의문과 궁금증이 많아 한 번 더 들어가서 다시 보고 싶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이 이 박물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뒤돌아보니 지금 필자가 소개하는 정도의 지식만 있었어도 훨씬 유익한 답사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부다페스트 홀로코스트 박물관 야외 벽면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


◆눈을 유혹하는 다뉴브강 야경

 무거운 마음을 달랠 겸해서 저녁에는 다뉴브 강의 야경을 구경했다. 유람선을 타고 한강보다 폭이 조금 좁을 것 같은 강을 올라갔다 내려와서 다시 올라가는 코스였다. 왕궁, 성당, 국회 의사당, 대학 건물 등 대형 건물에 장식된 불빛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우리 가족은 다음날 시내 구경을 했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그 가운데는 젊은 연인들도 제법 있었다. 성당 꼭대기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은 사람 냄새가 나는 도시 그 자체였다. 마음을 편하게 하여 한참을 보냈다. 강의하고, 자료 조사하고, 원고 쓰느라 늘 바삐 살아온 터라 오랜만에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시장에 들러 사람 사는 체취도 만끽했다. 싱싱한 과일도 많아 이것저것 챙겼다. 우리는 다음 일정을 위해 부다페스트를 떠나야만 했다. '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을 가면 좋을 텐데, 말도 못 꺼냈다. 꺼냈다간 좋은 여행 망칠 것 같아서였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오려나, 폴란드로 향했다.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고속 전철을 타고 시내로 들어왔다. 사람들 분위기는 부다페스트보다 더 세련되어 보이지만, 왠지 굳어 있는 모습이었다. 무거워 보인다고 할까? 빌딩들이 도처에서 지어지고 있었다. 삼성과 기아 대형 광고판도 보였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민박에 해당되는 '가족 호텔'에 짐을 풀었다. 대형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을 사서 20평쯤 되는 아파트에서 여러 종류의 캔 맥주로 호젓한 밤을 보냈다. 일단 맥주 값이 싸서 좋았다. 소시지와 햄 등도 저렴한 가격에 실컷 먹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느 곳과 다름없는 첫날밤이었다.

 광주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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