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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16>영산포 풍물시장
폭염의 폭력은 여전하지만 장터의 시간엔 '맏물'이 가득
입력시간 : 2018. 08.24. 00:00


시장 옷가게의 화려한 디스플레이- 요즘은 시장의 옷도 유행에 민감한 탓에 올해 팔지 못하면 떨이라도 해야 한다.
111년만의 폭염이라 했다. 입추가 지난 지 1주일이 넘었는데도 섭씨 40도를 오가는 폭염은 계속됐다. 폭염의 날씨가 폭력배를 닮았다. 햇살이 눈을 찔렀고 땀은 피처럼 흘렀다. 횡포가 두려운 사람들이 장날에도 나서기를 꺼렸다. 말복을 하루 앞둔 영산포 풍물시장은 손님이 상인수를 결코 넘지 않았다. 가게마다 선풍기를 돌렸지만 지친 선풍기는 더운 입김을 토해냈다.

하지만 폭염은 남아도 산천의 시간은 절로 가는 법. 장터엔 벌써 가을의 맏물들로 가득했다. 뭍에서는 고구마와 고추가 나오고, 바다에서는 전어도 나오고 짱뚱어도 튀어 푸드덕 거렸다.

옥수수는 25개에 1만원이라고 써 붙었고, 작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햇고구마는 크기에 따라 5천원과 1만원 어치를 구분해서 팔았다.

짱뚱어는 마리당 1200원을 불렀고, 전어는 1kg에 1만2000원을 호가했다. 용수철저울의 지침이 1kg 부근의 눈금에서 흔들릴 때 전어는 열 두어 마리가 올랐으니 짱뚱어와 전어는 도긴개긴이다.

젓갈가게에는 어패류의 종류보다 가지 수가 더 많은 젓갈들로 가득 찼다.


◆짱뚱어와 전어는 도긴개긴

짱뚱어는 산란기인 지금이 제철로 가장 맛있을 때다. 어물전 한 귀퉁이에서 머리에 수건을 대충 두른 할머니가 짱뚱어를 팔았다. 할머니 앞에 놓인 빨간 고무 다라이에는 눈을 휘둥그레 뜬 짱뚱어가 서로의 튀어나온 눈을 낯설게 바라봤다. 짱뚱어는 탕이나 전골도 맛있지만 구이도 별미다.

10여년도 훨씬 넘은 어느 해, 영산포 등대부근의 식당에서 먹었던 짱뚱어 꼬치구이의 풍미가 입안에서 살아났다. 고소하면서도 페스추리 빵처럼 바삭하고 보드라운 식감이 함께 조화를 이룬 짱뚱어 구이는 입안으로 그칠 줄 모르고 들어갔고, 식탁엔 가드다란 꼬치가 수북이 쌓였었다.

할머니는 짱뚱어 회를 추천했다. "구이도 맛있지만 회로 먹으면 더 맛있다"며 "잡사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안다"고 했다. 짱뚱어 꼬치구이야 오래전에 '잡사 본' 기억의 맛으로 끌어낼 수 있지만 여태 경험하지 못한 짱뚱어 회 맛은 가늠키 어렵다.

할머니는 신안군 지도에서 전문적으로 짱뚱어를 잡는 사람에게서 받아온다고 했다. 영산포는 아무래도 신안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신안 앞바다의 홍어에 이어 신안의 갯펄에서 자란 짱뚱어도 영산포의 음식 메뉴에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산포라는 지명 역시 잦은 왜구의 침몰에 따른 소개령으로 신안 영산도 주민들이 고려시절 이곳에 정착하면서 생겼다고 하니 더욱 그렇다. 신안이 이라면 영산포가 입술인 셈으로 순치지국(脣齒之國)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록적인 폭염에 상인도 잠이 들고, 선풍기는 더운 호흡으로 허덕이고 있다.


◆때깔 좋은 건고추

유별난 더위로 농작물의 수확이 예년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시장에는 김장용 햇 건고추가 커다란 비닐포대에 담겨 곳곳에 쌓였다. 햇 건고추는 한 근(600g)에 1만3천원에서 1만7천원까지 다양했다. 처음 하루 정도는 건조기를 이용한 뒤 나머지는 햇볕에 말리는 반태양초다.

나주시 성북동에서 70대 노부부가 고추 가게에 발길을 세웠다. 고추가게 주인아저씨는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면서 상품설명에 바빴다. 주인은 "이거 얼매나 좋소. 주름도 없고 탱글탱글하면서 반지르하니 때깔도 좋고"라며 손님의 동의를 구했다.

건고추를 만져보던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가격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조금 있으면 (가격이)떨어져. 그때 사세"라며 손에 들었던 고추를 다시 포대에 넣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사고 싶은가 보다. "아니어라우, 작년에도 처음에는 9천원 했는데 나중에 1만3천원까지 오른 것 못 봤소"라고 했지만 지아비는 먼 산을 보았다.

가게 주인이 끼어들었다. "시세는 아무도 몰라요. 갈아 먹을 라면 물짠 것도 괜찮은데…"

할아버지는 고추는 사지도 않고 지어미의 손을 끌고 가게를 나섰다. 하지만 미안했는지 한 마디 툭 던졌다. "많이 폴아서 돈 많이 버시오"

시장에서 만난 지게와 바작- 바작은 옛 그대로인데 지게는 현대의 물을 먹었다.


◆여름장사가 힘든 어물전

노점 옷가게 박 모씨(58·여)는 광주 첨단지구에 산다. 올해로써 경력 20년째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여성의류를 떼어다 판다. 영산포 풍물시장을 비롯하여 영광, 송정리, 무안, 남평시장 등의 5일장을 순례하듯 찾아다닌다고 했다. 5일장 다섯 군데를 도니 쉬는 날이 없는 연중무휴다.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정말 잘 됐어라우. 지금은 겨우 인건비나 따 먹고 있지라우.그때의 한 3분의 1이나 될랑가…"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도 홈쇼핑으로 사는 시대'가 박 씨가 진단하는 매출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다. 박 씨는 "20년 노점상으로 아들 딸 다 키우고 광주에 아파트까지 마련했으니 큰 걱정은 없다" 면서도 "어째 세상이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렵고, 잘사는 사람들은 더 잘사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박 씨의 눈에 비친 세상은 111년만의 무더위처럼 무엇인가 잘못돼 가고 있다.

영산포 풍물시장은 어물전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할 만큼 예로부터 어물전으로 유명하다. 진성현씨(47)도 아내와 함께 15년째 영산포 풍물시장과 나주 목사골, 화순, 영암, 영암시종장 등을 돌며 노점 어물전을 하고 있다. 어물전 장사는 여름철이 힘들다. 진 씨는 "여름철에는 어물의 특성상 재고가 곧 폐기처분이 되기 때문에 당일 팔 수 있는 분량을 잘 파악하여 가지고 나와야 한다"며 "올해는 더위로 인해 물량도 적은데다 시장을 찾는 사람이 줄어 매출이 작년 여름의 절반 수준이다"고 했다.

진 씨의 전통시장의 매출감소에 대한 진단은 홈쇼핑보다는 동네마다 들어선 대형마트에 있다. 그는 "영산포 풍물시장 주변에도 대형마트가 세 군데나 있다"며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을 다 죽인다"고 했다. 진 씨가 덧붙였다. "어쩔 것이오. 거기(대형마트)는 시장보다 비싸더라도 소포장으로 더 편리하고 더군다나 시원하기까지 한데…" 전통시장의 딜레마다.

신안 갯벌에서 자란 짱뚱어. 산란기인 요즘이 제철이다.


◆'눈 뜬 오징어 젓'도 있어요

상인회 박종철 회장(58)은 "아무리 그래도 시장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전통시장이 그 지역의 관광사업과 연계되고 상인들이 좀 더 싸고 좋은 물건을 갖고 친절하게 대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회장은 "시대흐름을 따라가려면 상인들 교육을 위해 교육장이 필요한데 교육을 하고 싶어도 현재는 교육장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영산포 풍물시장은 어물전과 함께 젓갈장으로도 유명하다. 밴댕이, 낙지, 멸치, 전어, 토하, 꼴뚜기, 아가미, 가리비, 참치창란, 전어밤젓, 갈치속젓… 등 어패류의 종류보다 젓갈의 종류가 더 많을 성 싶다. 게 중에는 '눈뜬 오징어젓'도 있었으니 심청애비 심 봉사가 울고 갈 일이다.

젓갈전 앞에서는 이웃인 듯 아주머니 둘이 밀고 당기기를 거듭했다. 서로 상대방의 젓갈 값을 자기가 대신 내겠다는 실랑이다. 파란 등산복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가 "내가 사주고 싶어서 그란데 어째 그란당가"라며 만 원 권 한 장을 가게 주인에게 던지고 총총걸음으로 가게를 벗어났다. 얼떨결에 밀쳐지고 남겨진 아주머니가 빨간 플라스틱 뚜껑의 젓갈통을 집어 들고 뒤를 좇았다.

복날을 하루 앞둔 닭전은 분주했다. 토종닭은 1만8천원, 오골계는 여기에 2천원을 더 얹어야 했다. 한우가게를 운영한다는 김도연사장(56·여)은 직원들과 함께 먹겠다면서 토종닭 세 마리를 사갔고, 영산포 부덕동에서 왔다는 어떤 아주머니도 복달임을 위해 닭전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닭전의 주인아주머니는 "요즘은 장날에 100여 마리 이상 팔린다"고 했다. 폭염으로 닭은 대낮에 울고, 닭전의 아주머니는 환히 웃는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국내 유일의 내륙등대였던 영산포 등대. 등대의 불은 꺼지고 그 영화만 흔적처럼 남았다.


영산포와 영산포 풍물시장

영산포는 일제 강점기 목포가 개항되고 일제의 수탈전진기지로 이용되던 영산강 유역의 주요 포구였다.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배들이 드나들었다. 그 이전에도 고려시대부터 조창이 설치 될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등대의 불도 꺼지고 항구시설들이 사라지면서 다만 영산포라는 지명만 남았다. 목포에서 영산포를 오가던 동력선대신 황포돗배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당시에 형성된 시가지의 모습 등이 옛 영화를 짐작케 할 뿐이다.

영산포 풍물시장은 매 5일과 10일자에 열린다. 나주 목사골시장, 남평장 등과 함께 나주의 3대 5일장이다. 홍어로 유명한 나주시 영산동 영산포에 있었던 영산포장이 영산포 풍물시장으로 개칭하고 2003년 현재의 이창동으로 이전했다. 어물과 젓갈전이 강하다.



취재후기

'영산포'하면 떠오른 것이 홍어다. 물론 1㎞ 쯤 떨어진 영산포 등대 옆에 홍어의 거리가 조성돼 있지만 시장에 홍어를 소재로 한 전문 요리집이 없다. 요즘 전통시장이 유명 먹거리위주로 경쟁력을 회복해가고 있는 점을 감안할 경우 이는 한번쯤 생각해볼 문제다. 전통시장이 지역경제의 마중물 역할은 물론 관광의 단초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특색을 살린 장터의 먹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미흡한 주차장 시설이다. 현재 노점상들을 위한 비가림 공사가 진행중이고, 내달 쯤 완공될 경우 노점상이 점유하고 있던 공간을 주차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여 근본적인 주차장 확보가 필요하다.

이와함께 장옥과 노점에서 취급하는 어물이나 야채, 의류, 잡화 등등의 품목들이 구역별로 집적화되지 않고 여기저기 산재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영석        조영석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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