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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17 >영광 오일장
덤이 없으면 에누리가 있고 에누리가 없으면 덤이 있고
하지만 우리 장 아니여"
전통시장의 풍미마저
상실한 것은 아니다.
비록 장터의 품목은 단출하고
찾는 이 많지 않지만
그럴수록 장터엔 에누리가 있고
입력시간 : 2018. 10.05. 00:00


영광오일이장은 별도의 장터가 있지 않고 영광고추특화시장 주차장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는 수확 철에 비가 많이 와서 배추가격이 지난해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값이 싸서 웃는 자도 있겠지만 우는 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다.


'영광 양건'이라고도 불리는 영광 태양초는 살이 두터운데다 매운 맛과 단맛이 어우러진 감칠맛으로 태양초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가을이 없는 영광은 영광(榮光)이 아니다.

가을이면 영광에는 광주에서, 대구에서,

서울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몰려든 사람들은 울긋불긋 꽃이 된다.

"아, 글씨 말이여! 전통시장의 소비자는 대부분이 노인들이 잖어.

노인들이 한 푼이라도 싸게 살라고 장에 오는데

여그는 버스도 잘 안와. 자가용타고 장보러 오는 노인들이 어딨어.

그러니 물건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해서 안 오는 거지. 우리를 위한 장이라고



지명도 꽃이 될 수 있다면 영광(靈光)은 가을에 피는 꽃이다. 불갑산 아래 불갑사에서는 상사화가 들불처럼 타오르고, 법성포에서는 굴비가 불티난다. 그 뿐이랴. 서해안의 명물인 대하도 숯불위에서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가을이 없는 영광은 영광(榮光)이 아니다. 가을이면 영광에는 광주에서, 대구에서, 서울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몰려든 사람들은 울긋불긋 꽃이 된다.

가을의 영광은 고려 때부터 조창이 있던 곳이자 해산물과 소금, 땔나무, 나물 등이 많아 어염시초(魚鹽柴草)의 고장으로 불렸던 근거를 실증한다. 매년 이맘 때 쯤 이면 모든 언론 매체에서 한번쯤 주말 나들이 장소로 영광을 꼽는 이유에 이의가 없다.

영광이 꽃으로 피어나던 가을 어느 날, 영광 오일장을 찾았다. 영광 오일장은 별도의 간판이 없다. 영광고추특화시장의 주차장에 영광 오일장이 매월 1일과 6일에 함께 열린다.

영광고추특화시장에 더부살이하는 영광전통시장에서 영광은 찾기 힘들었다. 읍 단위 여느 시장과 달리 있을 게 없고, 없을 게 없다. 규모와 품목 면에서 한정적이다.

차별화나 특성화 된 시장도 아니어서 가을꽃처럼 피어나는 영광의 전통시장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멋쩍다. 야채와 과일, 의류 노점이 장을 채웠다.

◆ 가을의 영광은 꽃 이름이다

굴비는 물론 조기도 없고, 전어구이 집 하나 없다보니 상사화처럼 불콰하게 물드는 얼굴빛도 있을 리 없다. 장은 그저 조용하고 한산했다. 숯불위에 새우와 백합조개를 올려놓고 모싯잎 송편을 먹으며 영광의 가을을 만끽하고 싶었던 마음에 현실은 재해나 다름없었다.

재해와 관련하여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하나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통계학적 법칙이다.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징후는 차량의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곳으로 안내할 때부터 시작됐다. 차량의 '김양'이 안내한 곳은 영광종합터미널에 있는 영광터미널시장이었다. 동행했던 영광출신 무등일보 이석희국장도 몇 군데 전화를 돌리고서야 오일장이 서는 고향의 장터를 겨우 알아냈다.

영광종합터미널 주차장이 영광오일장 장터였으나 1년 전 쯤 고추특화시장으로 옮긴 탓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정비도 덜 되고 인지도마저 떨어져 영광오일장은 전통시장의 초기양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단출하지만 풍미는 가득

이유를 물었다. "아, 글씨 말이여! 전통시장의 소비자는 대부분이 노인들이 잖어. 노인들이 한 푼이라도 싸게 살라고 장에 오는데 여그는 버스도 잘 안와. 자가용타고 장보러 오는 노인들이 어딨어. 그러니 물건 들고 다니기도 불편하고 해서 안 오는 거지. 우리를 위한 장이라고 하지만 우리 장 아니여"

또 다른 상인은 손가락 끝을 내부로 향했다. 그는 "전통시장은 누구나 들어와 노점을 해야 활성화되는데 기존 노점상들의 텃세로 언감생심이다. 빈 터가 있어도 못 들어간다. 최빈곤층이나 젊은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마지막 줄이라도 잡는 셈으로 노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노점이 개방돼야 하는데 그런 정책이 없으니 이게 개딱지 같은 법이지 뭐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인의 시각과 입장에서 나온 주장이고, 행정기관 역시 나름의 애로가 있겠지만 영광오일장에서 상인들의 불만은 가을 하늘만큼 높았다.

그렇다고 영광오일장이 전통시장의 풍미마저 상실한 것은 아니다. 비록 장터의 품목은 단출하고 찾는 이 많지 않지만 그럴수록 장터엔 에누리가 있고 덤이 있기 마련이다. 찾는 사람이 또 찾는 실속의 경쟁력으로 장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 집에 가서 웃는 '윈-윈' 셈법

장터에 나만임(여·55)씨가 과일 노점을 펼쳤다. 과일을 싣고 온 나 씨의 파란색 1톤 봉고트럭에는 사과와 배, 포도, 복숭아, 바나나 등의 과일이 상자 채 가득 실려 있고, 땅에는 싣고 온 과일들이 작은 바구니에 담기거나 상자로 도열하듯 놓였다.

70대 할아버지가 복숭아를 고르며 이리저리 만지자 나 씨가 "복숭아는 만지면 물러진다"고 제지 했고, 할아버니는 "내가 사면 되잖어"라고 되받아치면서도 만지던 복숭아에서 손을 뗐다.

할아버지가 복숭아 한 상자를 산 뒤 "나, 약속 지켰으니 하나 안 빼줘?"라고 덤을 요구했다. 나 씨는 익숙한 솜씨로 사과를 깎아 한 조각을 먹어보라고 권한 뒤 "바구니에서 사과 하나를 골라가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사과 두 개를 손에 쥐었다. 나 씨가 "두 개나 가져가면 나는 어쩌라고"하면서도 웃었다.

손익계산서를 헤아려 보니 얼추 할아버지의 완승이다. 나 씨가 사과를 깎아 맛을 보여주며 사과를 덤으로 가져가라는 것은 사과도 함께 사라는 의미였을 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사과를 사는 대신 덤으로 두 개를 손에 넣었으니 집에 가서 웃을 일이다.

하지만 나 씨라고 손해 본 장사였겠는가. 할아버지가 '만지면 물러진다'는 말에 가격흥정을 잊었거나 포기했으니 나 씨 역시 집에 가서 웃어도 된다.

할아버지는 에누리 대신 덤을 얻었고, 나 씨는 덤을 내주고 에누리를 챙겼다. 시장의 셈법은 이처럼 '윈-윈'이다. 나 씨가 말했다. "나는 박리다매의 단골장사로 먹고 사는데 장사 잘 하는 편에 속한다."



◆ '워매, 사람 죽겠네~'

상징물로 붉은 고추가 매달린 영광고추특화시장 초입에서 유평농장 김길섭(67)씨 부부가 농장에서 기른 닭과 도매로 떼어 온 건고추를 팔았다. 김 씨가 건고추를 놓고 손님과 흥정을 벌였다.

태양초 상품 한 근의 가격을 놓고 1만2천원까지 공세를 펼치는 아주머니에 맞서 김 씨는 1만3천원에 배수진을 쳤다. 김 씨가 "1만6천원에 사왔는데 1만2천원에 팔라면 어쩌란 말이냐"며 "사람 죽겠네"를 연발했다.

김 씨가 1만500원에 파는 중품 태양초를 권했지만 아주머니의 눈에 중품은 성이 차지 않았다. 지루한 공수 끝에 결국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각각 500원씩을 양보, 거래가 성사됐다.

김 씨의 고추 포대 옆에는 김 씨 부부가 농장에서 직접 키웠다는 청계와 토종닭이 그물에 둘러싸여 푸드덕 거렸다. 청계는 한 마리에 2만5천원을 호가했고, 토종닭은 1만5천원을 불렀다. 가격은 여느 시장에 비해 저렴한 편이나 도축시설이 없어 불편하다. 1km 쯤 떨어진 영광터미널 시장에 도축해주는 닭집이 두 세군데 있다. 한 마리당 3천원의 도축비용을 받는다.

김 씨는 자신의 농장에서 닭 이외에도 거위, 칠면조, 기러기 등을 키운다고 했다. 초생추도 팔고 토끼도 판다.

영광오일장의 장터는 고추특화시장의 주차장을 이용하고 있어 평면의 직선처럼 단순하다. 모롱이를 지나가는 일도 없고, 골목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상가도 없다. 시장 끄트머리에 작은 무대가 설치돼 눈길을 끌 뿐이다.

시장과 병렬하여 위쪽에 고추특화시장 점포들이 양쪽으로 마주보고 들어서 있다. 고추시장은 새벽시간대에 거래가 한창인 탓에 한 낮의 고추시장은 문을 연 가게보다 닫힌 가계가 더 많다. 문을 연 가게에도 손님은 없다.

◆ 싸서 우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 아는 채를 했다. 오일장에서 야채 노점상을 하는 아주머니다. 아주머니가 지명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나, 영산포~" 지난 달 나주 영산포 풍물시장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다.

기억이 가물거렸지만 반가웠다. 장터 취재 횟수가 늘어나면서 나도 제법 장터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 싶다. 이제는 관청에서 나온 원산지 단속반으로 오해하는 일이나 없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던가. 야채상 건너편의 튀김이며 만두, 찐빵 등을 파는 먹거리 코너에서 찐빵을 사와 나눴다. 시장에서 먹는 찐빵은 언제나 그렇듯이 부드러움과 따스함으로 달콤한 기쁨을 선사한다.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기자'라고 나를 소개했다. 오상교(61)씨 부부다. 남편은 배추를 손질하고, 아주머니는 손님에게 건네주면서 계산하는 분업과 협업으로 부부는 바빴다.

광주 첨단지구에 산다는 부부는 오일장 네 군데를 돌고 하루는 쉰다. 공판장에서 매일 새벽 3시에 물건을 떼어 오기 때문에 장터에 나온 물건이야 싱싱하지만 사람은 하루쯤 쉬어야 싱싱해진다고 했다. 쉼의 철학은 장터라고 다르지 않다.

오 씨는 "태풍 솔릭 이후 비가 많이 와서 배추에 사금(배추 안쪽 줄기에 생긴 검은 점)이 많이 들었다"며 "올해는 시세가 싼 편이다"고 했다.

배추 상품 3개에 1만원이다. 조금 있으면 절반가격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오 씨가 덧붙였다.

배추가격이 떨어지면 누군가는 웃고, 다른 누군가는 울겠지만 나는 우는 누군가의 심정을 헤아리고 싶었다. 고향땅 노모가 키우는 배추는 떨어지는 시세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영광태양초와 영광고추특화시장



색이 붉고 살이 두터운 영광태양초는 매운 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감칠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영광의 황토와 칠산 앞바다의 해풍이 키운 고추를 햇볕에 말린 것으로 '영광양건'이라고도 한다.

영광군의 고추 재배 면적은 1천여 ha로 전남 전체 재배 면적의 12%, 전국 재배면적의 약 2%에 해당한다. 건고추 기준 연간 생산액이 300억원에 달한다.

고추특화시장은 이러한 영광태양초의 인기에 힘입어 1980년대 말부터 영광읍 진입로인 한전사거리에 자생적으로 상설 고추특화시장이 형성됐다. 2008년 말 현재의 영광읍 신하리로 이전, 주차장과 비가림시설, 화장실 등을 갖추고 새롭게 개장했다. 충북 음성, 경북 영양과 함께 전국 3대 고추시장에 속하며 단일규모로는 전국 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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