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장터의 삶, 장터의 맛 <18>함평오일장
장터의 시간이 위로가 되는 사람들
입력시간 : 2018. 11.23. 00:00


어물전이 발달한 함평오일장. 장터는 장이 삶이고, 삶이 장인 사람들에게 더없는 희망이자 위로가 되기도 한다.
11월 중순의 함평오일장은 북적이는 열기가 겨울로 접어드는 날씨를 상쇄했다. 장터에서는 살 오른 운저리와 참숭어가 푸드덕 거리고, 가을걷이를 끝낸 사람들의 호주머니도 날생선 만큼이나 싱싱했다. 가요 테잎을 파는 트럭 노점의 스피커에서는 유명가수의 노래를 무명가수가 빠른 템포로 불러 제쳤다.

장터의 사람들은 찰진 소고기처럼, 때로는 매운 고추장처럼 즐겁거나 신고의 삶이었지만 결국은 한 그릇의 비빔밥처럼 서로의 역할로 장터의 시간을 채웠다.

"청각을 넣으면 김치에서 바다향이 나온다"라는 노점 할머니의 경험은 카피 같은 시어(詩語)가 되어 또 다른 청각을 팔았고, "라면 값이 오른다기에 한 박스를 샀다"는 중년 부인의 구매는 가난한 지아비에게 아렸다.

'꽃게 1kg, 15,000원'이라고 가격을 써 붙인 어물전에서 주인아주머니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꽃게 7마리를 비닐봉투에 담아 눈금저울에 올렸다. 저울의 바늘이 부르르 떨다 1.4kg에 멈췄다. 손짐작이 저울 못지않을 텐데 2마리나 더 얹은, 떨지 않는 그녀의 손이 곱다.

생태 3마리가 한 단위가 되어 1만원이었고, 목포갈치는 20여토막이 1만원이었다. 꿈틀대는 운저리도 1kg에 1만원이고, 장어는 1kg에 1만5천원을 불렀다. 생물 조기는 크기에 따라 한 두름에 5천원에서 2만5천원까지 다양했다. 겨울이 제철인 석화도 나오고 매생이도 벌써 나왔다. 어물전에서 최고의 몸값은 세발낚지가 차지했다. 마리당 3~4천원을 호가했다.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구경하던 중년의 남자가 말했다. "겁나게 비싸네~". 주인이 웃으며 화답했다. "겁나게 맛있어라우~". '겁나게'는 시장의 언어가 될 때 제 맛이다. 내 눈에는 어물전의 생선들이 '겁나게 많다'였다.

튀길 수 없는 것은 돈 뿐, 뻥튀기 가게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튀기고 볶아준다.


◆ '겁나게'는 시장의 언어가 될 때 제 맛

서해안 지역의 전통시장들이 으레 그렇듯이 함평오일장에서는 손질하지 않은 홍어들을 '겁나게' 볼 수 있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히죽이 웃는 듯한 모습의 홍어는 대부분 칠레산이나 아르헨티나산이다. 잔치용으로 많이 팔려나간다. 손질된 홍어회도 파는데 1만원 어치면 성인 두 명이 족히 먹을 만하다.

'홍어·조기 전문점'이라고 쓰인 가게에서 할머니가 조기를 사며 "나는 오면 여기만 온께"라고 한마디 던졌다. 무심한 듯 던진 할머니의 말은 '단골이니 좋은 물건을 싸게 달라'는 '유심'의 언어다. 역시 고객만큼이나 나이든 주인 할머니가 "알어, 긍께 누가 모를까"라며 조기 두 마리를 별도로 더 얹었다.

어물전 건너편의 야채상 귀퉁이에 강아지 예닐곱 마리가 종이상자에 담겨 서로 맞댄 채 체온을 나눴다. 상자에는 '한 마리 1만원'이라고 가격이 표시됐고, 그 앞에 광주에서 왔다는 젊은 아낙이 쪼그려 앉았다. 아낙은 "한 마리 가져다 키우고 싶은데 함께 사는 어머니가 싫어하실 것 같아 고민이다"고 했다. 그녀는 "집에 세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한 마리만 더 들이면 어머니 자신이 집을 나가시겠다고 한다"며 웃었다. 그녀는 결국 인근 옷가게에 들려 추위에 떨고 있는 강아지들을 위해 담요 하나를 사다 깔아 주는 것으로 애정을 가름했다. 아낙의 여린 마음이 강아지들의 눈망울에 닿았다.

함평장은 엽삭젓으로 유명하다. 엽삭은 전어 새끼를 뜻하는 전라도 말로 뒈미젓이라고도 한다. 전어의 위로 만들면 전어밤젓이고, 전어 내장으로 담그면 전어속젓이라고 하는데 엽삭젓은 통째로 담근다.

김장철을 맞아 젓갈가게 젓갈통이 금세 비워지곤 한다.


◆바다와 육지가 융합한 엽삭젓

엽삭에 소금을 뿌려 1주일가량 항아리에 절인 뒤 항아리에 고인 액젓을 따라내어 소뼈나 돼지뼈를 넣고 푹 끓여 곰국을 만든다. 식힌 곰국을 엽삭이 들어 있는 항아리에 붓고, 이를 하루걸러 세 번 정도 되풀이 하면 엽삭에 곰국이 배어 몸체가 통통해지고 바다와 육지가 융합한 새로운 맛이 탄생한다. 이때 갖은 양념을 하여 먹는데 조선시대에는 진상품의 반열에 올랐다.

김장 대목을 맞아 젓갈가게가 성황을 이뤘다. 트럭에 젓갈을 싣고 다니는 장꾼이 독새우젓까지 자랑하며 대목장에 가세했다. 김장은 지역에 따라 각기의 특색이 있으나 뭐니뭐니해도 그중에 새우젓이 으뜸이다. 하젓에 비해 추젓이 더 실하고 가격도 비싸지만 한 해 농사나 다름없는 김장에 추젓이 빠질 수 없다.

젓갈가게 앞에서 박종철(58) 영산포시장 상인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영산포시장과 무안시장, 함평시장 등을 돌며 부인과 함께 젓갈가게를 운영한다. 유난히도 무덥던 지난 여름, 영산포 오일장에서 가게는 부인에게 맡기고 상인회 회원들에게 냉차를 나눠주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나도 이제 제법 장돌뱅이가 다 되어가나 보다. 장터 취재가 회를 거듭하다 보니 반갑게 알아보는 시장의 상인을 가끔씩 접하게 된다.

그가 엽삭젓 한 통을 반가움의 선물로 내밀었다. '선물 증정'과 '실비 구입'을 놓고 서로 실랑이를 하다 우리는 장터의 우정을 5천원에 합의했다.

함평오일장에 조성된 함평한우 생고기 비빔밥 거리


◆만능 엔터테인먼트가 된 뻥튀기 기계

장터에는 올해 여든다섯의 강경자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장옥이 있는 것도, 노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야채가게에서 파 다듬는 일을 도와주는 것이 일이다. 파 한 단을 다듬어 주고 500원의 품삯을 받는다. 20여 년 전 심장수술을 한 뒤부터 몸놀림이 마음 같지 않다. 온종일 쪼그려 앉아 다듬어 보아야 너 댓 단이다. 하루 2천원 남짓의 품삯이다. 할머니는 함평장과 무안장, 영산포장을 다니며 파를 다듬고, 더러는 상추나 호박, 토란대 등을 팔아주기도 한다.

오래전에 할아버지를 보내 드렸고, 지난해에는 예순 살의 큰 딸을 앞세웠다. 할머니는 돈도 필요하지만 집에 혼자 있으면 가슴에 묻은 딸 생각에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몇 년이 될지 모를 일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순간까지는 장에 나올 심사다. 장터의 시간은 그녀의 삶에 위로다.

장터가 확장된 함평천변부지에서는 튀밥트럭의 조민훈(50) 사장이 부인 강대영씨와 함께 19년째 튀밥장사를 하고 있다. 트럭에는 각각 쌀 한 말이 들어간다는 튀밥기계 3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뻥~' 소리도 덩달아 쉴 새 없다.

시장의 튀밥 기계는 만능 엔터테인먼트다. 튀기는 것이야 본업이지만 튀기고 볶고, 튀밥의 크기를 키우고 줄이고, 용도에 따라 강도를 무르게 하고 단단하게도 한다.

쌀·보리·쥐눈이 콩·작두콩·돼지감자·우슬·여주·가지·밤·헛개열매·둥글게·땅콩·해바라기씨…등 세상의 모든 것을 튀겨내고 볶아낸다. 요즘에는 볶음 요구가 더 많다. 차로 우려먹거나 미숫가루용이다. 그가 쌀·보리·콩 등을 볶아 만든 '7곡물 미숫가리'나 단품의 귀리 미숫가루는 최고의 인기품목이다.

한 움큼을 한 아름으로, 한 되를 한 말로 튀겨내는 조 사장의 마법 같은 튀밥가계에서는 행복도 튀겨내고, 슬픔도 볶아낸다. 그의 천변 가게에 행복을 튀기려는 사람들과 슬픔을 볶아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돈도 튀겨 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못해요."

◆귤도 이쁘고 볼 일

함평오일장 상인회는 여느 시장과 달리 전담 매니저를 두고 있다. 경기도 성남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2년 전 귀농한 신소영(45)씨다. 그녀는 직장생활이 지겨워 부모님 농사를 도와드리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에 정착했다. 남편은 낚시용품을 만들어 인터넷 판매를 하고, 자신은 지난해부터 상인회와 관청의 가교역할을 하는 일을 맡고 있다. 상인회의 크고 작은 공적인 일들을 처리하거나 상인들이 겪는 현장의 개인적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는 등 함평오일장의 활성화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녀는 "삶의 생생한 현장인 시장에서 근무하면서 이전 직장생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겸손히 배우고 있다"며 "작은 힘이지만 고향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다"고 했다.

노점 과일가게에서 젊은 부부가 제주감귤을 골랐다. 중년의 주인 사내가 끼어들었다. "얼굴 못생긴 것은 1만2천원, 이쁜 것은 1만3천원인데 당도는 똑 같아요. 약(농약)을 하고 않고의 차이인데 못 생긴 것은 약을 하지 않고 나무에 그대로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인이 못생겼다고 말한 감귤은 껍질에 검은 기미가 군데군데 끼었다.

시식을 해 본 젊은 부부가 1천원을 더 주고 이쁜 귤을 한 상자 샀다. 귤도 이쁘고 볼 일이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아~맛나!'-쫄깃한 면발 달착지근 팥죽



함평오일장의 대표음식은 한우생고기비빔밥이다. 입소문을 타고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인기다. '전남 지역의 소 값을 좌우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남지역의 가장 큰 우시장이 함평오일장에서 열렸던 역사와 관련이 깊다. 고명으로 오른 각종 채소와 소뼈를 우려낸 선짓국, 고소한 맛을 더하는 삶은 돼지비계도 특징이지만 무엇보다 싱싱한 한우 생고기가 맛의 비결이다. 2014년 '함평천지 한우비빔밥 음식테마거리'가 조성됐고, 20여개의 전문 한우생고기비빕밤 식당이 성업중이다.

익히 알려진 한우비빔밥 보다는 수소문 끝에 전통수제팥죽을 찾았다. "외지인은 한우생고기비빔밥집으로 가고, 내지인은 팥죽을 찾는다"는 상인들의 귀뜸에 따랐다.

김인화(51)사장이 11년째 장터를 지키고 있다. 쫄깃한 면은 씹을수록 감칠맛이 나고, 팥죽은 달착지근하다. 깊고 그윽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설탕을 가미한다면 이곳 전통팥죽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우선 국산 팥을 가마솥에 넣고 장작불로 3시간 동안 삶아낸 뒤 채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걸러내는 전통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가스불로 삶으면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밀가루 반죽 또한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손으로 빗고 밀어낸다. 1인분씩 별도로 포장하여 하루정도 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킨 뒤 칼로 썰어 사용한다. 불 맛과 손 맛이 빚어낸 작품이다. 한 그릇에 5천원이다.

자신의 귀농을 성공이라며 기뻐하는 상인회 매니저 신소영씨.


함평오일장

매 2일과 7일에 장이 선다. 1903년부터 문을 연 전남 서부권의 대표적 오일장으로 100년이 훨씬 넘은 전통을 자랑한다. 전남지역 최대의 우시장과 함께 발전했으나 우시장은 지난해 학교면으로 이전했다.

상인회 회원기준으로 노점 100여명을 포함하여 180여명이 생업을 이어가고 있다. 싱싱한 수산물이 강점이다. 한옥 기와를 얹은 장옥의 멋스러움으로 2006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공용주차장이 있으나 인근 주민과 상인들이 사용하고 있어 주차하려면 인접한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등 불편하다. 시장 초입의 무분별한 쓰레기 방치도 흠이다.


조영석        조영석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9.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mdilbo@srb.co.kr긴급 대표전화 : 0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