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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의 시·정·만·담- 완장, 완장, 그리고 갑질, 갑질
입력 : 2018년 12월 13일(목) 00:00


필자는 지난해 이맘때쯤 우연찮게 '완장'이라는 제목이 달린 장편 소설(윤흥길 작)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의 대강은 이랬다.

마을에서 별다른 직업없이 어슬렁대며 돌아다니던 주인공 종술이 어느날 저수지 관리인이 되었다. 관리인의 보수는 고작 월 5만원에 불과했다. 쥐꼬리만한 보수에도 종술이 관리인을 맡아보겠다며 나선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완장을 찰 수 있는 권한 아닌 권한이 그의 입맛을 당겼다.

동네 이장 익삼은 친척뻘 되는 돈깨나 가진 최사장이 저수지 관리권을 따내자 낚시터로 만들어 돈을 벌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저수지관리권과 관련한 중간 이득을 다소 챙겨보려고 그 권한을 자신에게 넘겨주도록 한 뒤 종술을 관리인으로 채용한다. 저수지 관리권의 하청, 재하청인 셈이다. 성격 뻣뻣하기만 한 종술은 익삼의 약삭빠른 감언에 저수지 관리를 승낙하게 된다. 이후 종술은 사사로이 만든 노란 완장을 차고 밤낮없이 저수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철저한(?) 감시에 들어간다.

우리 사회 종술이들이 하는 갑질

몰래 낚시를 온 사람들이 완장 찬 종술에게 걸려 혼쭐이 나거나 근처 경치 좋은 곳에 텐트를 치고 야영나온 행락객들도 내쫓기는 신세가 되곤 했다. 저수지 주변에 얼찐거리는 이들은 예외없이 종술의 완장에 짓눌린 채 온갖 수모를 당하고 물러나기 일쑤였다.

"저수지는 엄연한 사유재산이고 이를 관리하는 자신은 그 사유재산을 철저하게 관리해줄 책임이 있다". 그런 강한 신념으로 무장한 종술은 저수지 관리인이라는 완장을 차고 사유재산을 침범하는 무리들을 향해 부여받은 권한의 칼을 마음껏 휘둘러 댔다.

때로 종술은 그 완장을 차고 읍내 번화가까지 나가 거들먹거리곤 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소, 조롱은 안중에도 없었다. 동네 방네 수군거림에 걱정 근심이 생긴 종술 어머니가 종술에게 충고를 해댔다. "네 아버지도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며 완장을 차고 도 넘는 일들을 했다가 그로 인해 비참하게 죽었다"고.

아들의 완장질을 전해듣고 아버지처럼 폐가망신할거라며 극구 말리는 어머니의 간곡한 호소를 귓등으로도 듣지않던 종술은 어느 순간, 완장의 저급한 속성을 깨닫는다. 주인집 양어머니의 폐물을 훔쳐 밤 봇짐을 싸 종술과 함께 달아난 기생 부월의 씹는듯한 말이 전율처럼 의식의 마비를 일깨워 주었다.

"눈에 뵈는 완장은 기중 벨 볼일없는 하빠리들이나 차는게여! 진짜 배기 완장은 눈에 뵈지도 않어!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없이 넘들이 흘린 푸시레기나 줏어먹는 핫질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게여!"

올 한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의 갑질이 기승을 부렸다.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되잖은 갑들의 하빠리 갑질이 세상의 분노를 자아냈다.

어떤 그룹은 당사 회장부터 시작해 싸모님과 그들의 아들, 딸 등 일가족이 모두 함께 나서 갑질의 명성을 드높였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또 다른 재벌의 초등학생 딸이 그의 등하교길을 도운 운전기사에게 어른들도 흉내내기 힘든 악담을 퍼붓고 해고 협박까지 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한때 상장 시장의 웃자리를 넘보던 회사도 오너의 갑질이 한 원인으로 작용해 상장 폐지의 벼랑 끝에 몰렸다.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경비원에게 온갖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가맹점에 질낮은 갑질을 해대다 그런 꼴을 당했다. 그가 저지른 거액의 횡령·배임은 물론 별개다. 특정 웹 사이트 운영 등으로 거액의 부를 축적한 사업가도 직원들을 상대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갑질을 해대거나 일반인의 상상을 넘는 짓을 강요했다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감옥에 갇힌 신세로 재판에 넘겨졌다.

어찌 이들 뿐이랴. 지면 관계상 본 란에 열거하지 못한 갑들의 사연은 부지기수다. 그들의 온갖 행악도 어제 오늘 있었던 일만은 아닐거다.

핫질 중의 핫질이 바로 완장이다

세상의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는 부의 대물림이나 부익부 빈익빈으로 현현하는 상대적 박탈감만 아니다. '그것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는 자본(돈)에 기대 상대를 깔보고 무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겁박까지 한다는데 있다. 이 경우 겁박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서민들의 살기위한 고달픈 사정을 빌미로 그들의 노예화를 더욱 부추긴다. 본인과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갑질의 횡포를 눈물로 감내하며 해당 직장에 목매야 한다는 점에서다.

다니던 회사에서 감당하기 힘든 수모와 횡포를 당하고도 자신과 가족들의 목구멍을 지키느라 쉬쉬해야 했던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뒤늦은 자학적 고백이라는 울림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른바 선민 의식, 귀족 의식은 금수저를 꽉 물고 태어난 이들의 비뚤어진 의식구조에서 비롯된다. 왕조시대도 아니고, '자유가 강물처럼 흐르고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다'는 현세에 귀신도 불러낼 수 있다는 자본의 힘을 가진 갑들 본인과 그 후예들에게 대물림된 유전자 성향이다. 그들의 행위, 행태는 완장 찬 종술의 그것과 다름없다. 갑질은 완장찬 자들의 저급한 거들먹거림과 부당한 횡포, 폭력이라는 이야기다. 공인되지 않은 작은 권력(부)에 취해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는 값싼 갑질과 완장 놀음. 더불어 살아가도 모자랄 공동체 사회를 파괴시키는 인간의 사악한 이기심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