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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 <20> 여수전통서시장- 익숙치 않은 불편함이 주는 즐거움
입력시간 : 2019. 01.25. 00:00


여수서시장은 격자형 비좁은 골목길에 곱창가게와 떡가게,족발가게,분식집 등이 한 그릇의 비빔밥처럼 섞여 풍미를 채운다.
 -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익숙치 않은 불편함이 즐거움이 될 수 있듯이 여수전통서시장은 '불편'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아도 될 듯싶었다.

 - 전통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상설시장인 서시장을 둘러싼 연등천변과 좌수영로의 인도도 노점상의 장터로 변하고 장의 이름도 '여수서시장'에서 '여수전통서시장'으로 바뀐다.

 - 시장골목을 채운 옷가게며 채소·그릇·지물·반찬·떡·곱창집 등은 한 그릇의 비빔밥처럼 경쟁과 상생을 매 순간 섞어가며 구수한 삶의 맛을 이뤄낸다.

 - 빨갛고 노랗고 파란색이 교차하여 섞인 복주머니가 할머니의 꼴마리에서 은밀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 대한을 하루 앞둔 장터에서 제철인 생굴과 매생이가 인기를 끌었다. 생굴과 매생이가 서로 궁합이 잘 맞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매생이는 달포쯤 있으면 채취가 끝나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전통시장의 원형과 볼거리를 찾는다면 여수전통서시장에 갈 일이다. 정리되지 않는 혼란과 약간의 왁자함, 가벼운 지갑에도 웃을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더 익숙하다면 여수서시장이 제격이다.

대부분의 전통시장이 시장 현대화 사업을 거치면서 정리 정비되어 가고 있는 추세다. 장옥과 좌대를 현대화 하고, 구획을 정비하고, 주차장을 확충하는 등 지자체마다 전통시장의 활로 찾기에 분주하다. 그러나 전통시장의 현대화는 많은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골농부가 한결같이 깜끔한 양복으로 갈아입은 듯 때로는 낯설어 어색하다.

여수전통서시장은 현대화가 필요하지만 모든 전통시장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풀어가는 해법에 대한 끄덕임을 망설이고 있다. 시장의 이름만 바꿔달면 거기가 여기이고, 여기가 거기인 듯한 전통시장의 현대화 사업에 대한 딴지로 읽혔다.

비좁은 골목, 난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수많은 노점, 품목별로 구획화 되지 않은 장옥, 주의하지 않으면 어깨를 부딪히는 이웃 같은 고객들, 질서와 혼란의 적당한 조화…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익숙치 않은 불편함이 즐거움이 될 수 있듯이 여수전통서시장은 '불편'을 마케팅의 수단으로 삼아도 될 듯싶었다.

여수전통서시장은 연등천과 여수의 주요간선도로인 좌수영로를 좌우 울타리로 하여 자리하고 있다. 장터가 원도심권에 형성된 탓에 도시와 장터가 별개로 나뉘지 않고 장터가 도시고, 도시가 장터다.

여수의 주요 간선도로인 좌수영로를 가득 채운 노점상.장터가 도시고, 도시가 장터가 된다.


◆질서와 혼란의 적당한 조화

시장은 격자형 좁은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 장옥들은 같은 업종끼리, 더러는 이종업종끼리 서로 부대끼며 좁은 골목을 채운다. 골목을 채운 옷가게며 채소·그릇·지물·반찬·떡·곱창집 등은 한 그릇의 비빔밥처럼 경쟁과 상생을 매 순간 섞어가며 구수한 삶의 맛을 이뤄낸다.

서시장에는 유난히도 곱창집과 족발집, 떡집이 많다. 골목 하나가 곱창골목이고, 또 다른 하나는 족발골목으로 명명했지만 곱창골목에 족발집도 있고 떡집도 있다.

곱창골목에 자리한 떡집 앞에는 소포장으로 판매하는 각양각색의 떡들이 놓이고 곱창집 앞에는 삶은 돼지머리와 순대 등이 눈길을 잡는다. 늘어선 돼지머리와 다양한 떡으로 인해 어느 잔치집 마당에 들어선 듯하다.

이강옥(63) 상인회 회장은 "여수서시장은 장옥이 들어서기 전 땅바닥에서 난전으로 시작할 때부터 곱창집과 떡집이 몰려있었는데 형태만 변했을 뿐 130년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고 보면 된다"고 유래를 설명했다. 곱창골목에는 모두 48개의 점포 가운데 32개의 점포를 떡집과 곱창집이 차지하고 있다.

전통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상설시장인 서시장을 둘러싼 연등천변과 좌수영로의 인도도 노점상의 장터로 변하고 장의 이름도 '여수서시장'에서 '여수전통서시장'으로 바뀐다. 장의 이름에 '전통'의 두 글자가 들어는 날에는 200여명의 노점상이 500여명으로 늘어난다.

연등천변에는 할머니들이 천변 양쪽을 따라 길게 늘어 앉아 이것저것 판다. '이것저것'은 한줌씩 싸온 콩이나 쌀이기도 하고, 시금치나 당근이기도 하는가 하면 메주나 시레기이기도 하다. 어쩌면 노점 할머니들이 파는 '이것저것'은 한 줌의 곡식이나 야채가 아니라 할머니 자신의 '이런저런' 삶인 줄도 모른다.

서시장 건너편의 교동시장 입구. 교동시장을 지나면 수산시장이 나온다.


◆'전통'이 들어간 장날은 노점 축제의 날

천변에서는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말린 고사리와 토란대, 도토리묵, 땅콩, 은행, 곶감 등을 좌판에 깔아놓고 지나는 발길이 멈추길 바랐다. 할머니의 바람대로 중년 사내의 발길이 잠깐 멈췄다. 하지만 사내는 비닐봉지에 담긴 은행의 가격을 묻고는 "대개 비싸네"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섰다.

할머니가 혼자 중얼거렸다. "만원이면 싸지 왜 비싸. 얼매나 손이 많이 가는데, 씻고 까고…"

발길을 돌린 사내를 대신하여 할머니의 삶을 내가 사야 할 듯싶었다. 할머니의 좌판 앞에 쪼그려 앉자마자 할머니가 도토리묵을 가리키며 말했다.

"좀 사시오. 내가 산에서 도토리를 주어다 맨든 거여. 다른데 묵 하고 달러" 할머니의 추천과 달리 나의 촐촐한 허기는 옆에 놓인 곶감을 요구했다.

"구 역전에서 기차타고 왔다"는 할머니는 "오늘은 손님이 많아 일당은 했다"며 웃었다. 할머니의 일당이 궁금해졌으나 '영업비밀'일거라 싶어 묻지는 않았다.

노점 할머니들의 중간중간에 뻥튀기 사장님도 호루라기를 불어가며 뻥을 튀기고, 땅콩장수 사장님도 붉은 땅콩을 볶으며 지나는 사람과 눈을 맞췄다.

연등천을 건너 서시장으로 들어서는 여수교 위에서 풍채 좋은 생선장수 아주머니가 손님과 생물 문어를 놓고 실강이를 벌였다.

"오만원만 줘" "싱싱하지도 않구만, 사만 원 드릴께" "뭣이라고? 이게 싱싱하지 않으면 뭐가 싱싱한데"

급기야 아주머니가 플라스틱 대야에서 문어를 끄집어내더니 손님에게 냅다 내밀었다. 문어발 여덟 개가 아주머니의 손에 달라붙거나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그지 말고 오만원 줘. 물메기 하나 얹어줄게" 결국 손님이 지갑을 열었다.

시장의 옷가게는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장 나들이의 이유가 된다. 식품류야 굳이 장에서 사지 않아도 현지 조달이 가능하지만 옷만은 장터가 최고다.

연등천의 노점 할머니들.


◆할머니 꼴마리에서 얼굴 내민 복주머니

누가 봐도 옷 사러 왔음이 틀림없을 것 같은 허름한 옷차림의 할머니, 그 할머니가 옷가게의 좌대에 쌓인 옷을 한참 뒤적이다 별말 없이 두툼한 회색 기모 바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5천원이라는 주인의 말에 할머니가 꼴마리를 뒤졌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색이 교차하여 섞인 복주머니가 할머니의 꼴마리에서 은밀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신기해야 할 일이 아닌데도 신기한 듯 했고, 마치 오래된 흑백 영화의 영상 같은 장면은 아련한 기억을 소환했다.

반세기도 넘은 어느 해 설날, 저런 복주머니를 차고 세배를 다녔던 그 어떤 소년이 오버랩 됐다. 이제는 받았던 복돈을 돌려주어야 할 때, 올 설에는 복주머니에 복돈을 담아 세배 온 아이들에게 돈이 아닌 복을 주어야겠다. 계산을 치르고 발길을 떼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골목길에서 사라질 때 까지 바라봤다.

대한을 하루 앞둔 장터에서 제철인 생굴과 매생이가 인기를 끌었다. 생굴과 매생이가 서로 궁합이 잘 맞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매생이는 달포쯤 있으면 채취가 끝나기 때문이다.

11월부터 2월까지 진도와 강진, 완도, 장흥 등지에서 나오는 매생이는 약간의 오염물질만 닿아도 녹아버리는 성질을 갖고 있다. 청정해역의 무공해 식품이라는 의미다.

대표적 고단백 식품인 매생이는 굴을 넣어 끓인 국이나 죽, 또는 파나 솔을 썰어 넣은 전 등의 요리가 일품이다.

물메기의 몸통을 가로로 듬성듬성 칼집을 내어 싱싱함을 드러내 보인 어물전 옆에서 머리에 수건을 두른 아주머니가 매생이와 굴을 팔았다. '완도 찰 매생이'는 어른 주먹만한 한 제기에 2천원이었고, 아주머니가 방금 깐 생굴은 한 봉지에 5천원을 불렀다.

굴껍질을 까던 아주머니는 허연 우윳빛으로 빛나는 생굴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기도 하고, 비닐봉지에 담기도 했다.

'저걸 사? 말아?' 망설이는데 아주머니가 방금 깐 생굴 하나를 먹어보라며 작은 칼에 끼어 칼 채 건넸다. 물컹한 식감과 함께 바다가 밀려오듯 입안에는 비릿한 향이 가득 퍼졌다. 어쩌겠는가. 기꺼이 매생이 두 제기와 생굴 한 봉지를 샀다. 매생이 전과 죽이 있는 그날 저녁의 식탁은 행복했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여수전통서시장

상설시장인 서시장에 매 4일과 9일, 오일장이 열린다. 오일장을 '서시장 주변시장'이라고도 한다. 여수는 옛날에 동정과 서정으로 나뉘어 불렀고, 서시장은 서정의 한 축인 서교동에 자리한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1932년 여수동시장과 함께 정식 개설됐으나 장의 시초는 130여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여수에는 서시장과 동시장 이외에도 덕양시장, 교동시장, 수산시장, 중앙시장, 진남시장, 봉산시장, 제일시장, 미평시장, 쌍봉시장, 수산물특화시장 등 12개의 시장이 있다. 특히 상설 종합시장인 서시장에서 시작해 도로 하나씩 건너면서 이어지는 교동시장(아침시장)과 수산시장, 수산물특화시장, 이순신광장의 중앙시장(새벽시장)을 둘러보는 시장투어도 여수나들이의 특별한 게미가 될 수 있다. 수산시장과 수산물특화시장에서는 횟감을 골라 즉석에서 회를 즐길 수 있다.

'아~맛나!'-청춘돈가스·녹두새알죽



여수서시장의 대표적 먹거리로는 곱창요리를 들 수 있다. 곱창요리를 좋아한다면 일생에 한 번쯤 찾을 일이다.

곱창요리와 함께 청년창업 가게인 '청춘돈가스' 돈가스도 추천할 만하다. 수제돈가스, 카레돈가스, 치즈롤돈가스, 흑임자돈가스 등 각종 돈가스를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오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주문 후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소스와 돈가스 포함하여 한 개당 종류에 따라 2천500원에서 3천원이다.

삼시세끼반찬점에서는 주인 송정자씨(64)가 베트남 며느리와 함께 팥죽과 수제비를 판다. 녹두새알죽이 감칠맛 난다. 팥 대신 녹두를 사용한 녹두새알죽은 쫄깃한 새알과 진하게 끓인 녹두가 환상의 콤비를 이룬다. 차갑게 해서 먹어도 별미가 된다. 한 그릇의 가격은 6천원. 돈가스와 새알죽 모두 포장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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