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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설 민심-위기의 호남정치 어디로 가는가
입력 : 2019년 02월 07일(목) 00:00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

민심은 천심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설 민심이다. 민족의 대이동이 이뤄지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과 친지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대화의 주제는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에 이르기까지 영역이 없다. 일부에서는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설 민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오히려 SNS의 힘을 빌려 더욱 확산되는 경향이 짙어졌다. 여론 흐름의 중요한 척도로서 설 밥상머리 민심만한 게 없다. 정치권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이번 설 명절의 민심은 뭐니 뭐니 해도 민생경제와 정치 이슈로 모아졌다.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하소연, 호남의 정치가 실종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푸념들이 쏟아졌다. 시장통의 장삼이사(張三李四), 밥상머리의 필부필부(匹夫匹婦)들이 하는 얘기다. 서민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소득주도 성장론을 내세워 왔고, 최근에 대통령이 직접 민생경제를 챙기는 모양새지만 서민들의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 영세 상공인들의 어려움이 크다. 청년실업 문제 또한 심각하다. 앞으로도 경제지표가 썩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더 큰 문제다. 정부는 여러가지 희망 섞인 자료들을 내놓고 있지만 서민들의 체감경기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설 민심이다.

경제 분야의 무기력증 못지않게 정치에서 느끼는 허탈감도 크다. 무엇보다 호남정치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곰곰이 따져보면 뼈아픈 대목이다. 과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이끌어왔던 게 호남정치였는데, 언제부턴가 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도대체 존재감이 없다. 호남지역내 다수당은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이지만 정당 지지율은 바닥세다. 광주·전남지역에서조차 모두 5%대 미만 턱걸이다. 양 당의 지역구 국회의원 가운데 3선 이상 중진이 6명이다. 이들 중에 과연 중앙무대에서 제목소리를 내는 의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의문이다. 그러다보니 호남의 정치가 실종됐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떠다닌다.

양 당 입장에서 본다면야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호남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후광효과를 등에 업은 민주당의 지지도가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분위기를 반전시킬 만한 모멘텀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호남 제1당인 민주평화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마저 깨져 입지가 더욱 좁아든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호남정치를 대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역 국회의원들의 하소연이다. 하지만 민주평화당이나 바른미래당 모두 스스로가 변화하고 혁신하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당한 이후에 여러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뼈를 깎는 혁신 없이 지리멸렬한 모습만 보여 왔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민주평화당과 바른미래당 소속 호남 의원들 사이에 통합논의도 있는듯 하다. 거대 양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권의 제3지대 통합론이 필요하다는 명분이다. 호남을 매개로 한 통합론이다. 현 정치구도나 당의 낮은 지지율로는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통합 명분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유권자들이 얼마나 동의해 줄지는 의문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 오로지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한 통합만을 꾀한다면 여론은 금세 등을 돌릴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다. 광주·전남 전체 18석 가운데 민주당 소속은 고작 3석이다. 그 중에 한 명은 입각한 상태라, 두 명의 국회의원이 호남 전체를 아우르고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손혜원 의원 땅투기의혹 파문이나 김경수·안희정 법정구속 등 잇따라 터져 나오는 대형 이슈들도 악재다. 여기에 현 정부의 경제실정 논란까지 가세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예전 같지 않다. 내년 총선 때까지 견고할 것만 같았던 민주당의 아성도 '이제는 한 번 지켜보자'는 쪽으로 기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설 민심이 전하는 메시지가 모두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호남 대권주자에 대한 기대감이 그 중에 하나다. 호남 출신 이낙연 총리가 유력한 대권주자로 거론되고 있다는데, 과연 호남 대권이 가능할 것이냐라는 희망 섞인 기대다. 기자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 도지사까지 지내 정무적 능력과 행정경험을 두루 갖췄다. 야당 국회의원들을 향한 사이다발언에 국민들이 열광하기도 했다. 최근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빠지면서 주춤하고 있고, 총리직을 내려놓았을 때 과연 확장성이 있을 것인지, 당내 좁은 입지는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몇 가지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기분 좋은 상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긴 설 명절 연휴가 끝나고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또 서민들의 얘기는 잊혀져 갈 것이다. 하지만 설 명절 민심이 전하는 준엄한 메시지만큼은 분명하다. 민생경제를 돌봐달라는 주문, 실종된 호남 정치를 되찾아 달라는 요구에 대해 이제는 정치권이 응답할 때다. 정치가 바로 서야 호남이 살고, 나라가 산다. 내년 총선이 그리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