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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이것이 인간인가
입력시간 : 2019. 02.21. 00:00


조덕진 문화체육부장 겸 아트플러스 편집장

"따스한 집에서/안락한 삶을 누리는 당신,/집으로 돌아오면/따듯한 음식과 다정한 얼굴을 만나는 당신/생각해보라 이것이 인간인지./…평화를 알지 못하고/빵 반쪽을 위해 싸우고/예, 아니오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죽어가는 이가."(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중에서)

고 프리모 레비의 홀로코스트 증언의 한 대목이다.

이탈리아 화학자이자 작가였던 그는 저 끔직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인물 중 한명이다.



경이로운 무지와 잔혹함



이탈리아에 동화한 유대인 후손 레비는 1943년 파시즘의 광기에 맞서 빨치산에 참가했다. 허나 별반 활동도 못하고 체포되고 만다. 천만 다행으로 당시 노동력이 부족했던 나치가 학살의 속도를 늦추며 죽음은 유예됐고 용케 살아남았다.

그곳에서 그는 '우연히 객차 이쪽 문으로 내린 사람은 수용소로 들어갔고 다른 쪽으로 내린 사람은 가스실로 향'하는 유대인의 처참함과 맞닥뜨린다. 구타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외려 '무척 심오한 경이로운 체험'을 한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고도 사람을 때릴 수 있는지'.

그가 새삼 그리워 지는 것은 자유한국당 때문이다. 최근 대표경선 과정에서 보인 이들의 행태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이고자 했던 치열한 영혼을 불러낸다. 김진태 김순례 나경원 등으로 대별되는 한국당 의원들과 그들이 혹은 그들을 추종하는 지만원으로 상징되는 극단주의자들의 무지와 잔혹함이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질문을 되살린다.

잠시 시간과 공간을 옮겨보자.

1980년 5월 아시아 광주라는 도시. 농아 김경철씨는 계엄군의 질문에 대답을 못해 현장에서 총살당했다. 둘째 아이를 가진 만삭의 최미애씨. 학생들 걱정에 학교에 나간 남편을 마중하다 계엄군의 총탄에 생을 마감했다. 그녀는 동네 골목길 전봇대 뒤에서 가슴에 총알을 관통당했다. 계엄군은 총상을 입은 만삭의 여인을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허락치 않았다.

전쟁보다 잔혹한 계엄군의 진압이 끝나고 일상이 왔지만 그곳에서는 누구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80년 5월 도청을 사수하다 체포된 김영철씨. 고문 후유증에 평생을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했다. 상무대에서 자행된 모진 고문에 그는 몸과 마음을 모두 뻬앗겼다. 정신병원을 전전하다 그렇게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으로 갔다.

그뿐인가. 지역 한 자치단체의 부유한 제재소집 딸 A. 꽃다운 여고생 A는 그해 계엄군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종적이 묘연해졌다. 들리는 바로는 정신을 빼앗겼고 귀한 딸의 불행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의 가족들까지 흔적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다양한 불행의 끔찍한 얼굴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그렇게 1980년 후 광주의 일상은 한낱 이미지에 불과했다.

항쟁의 처참함을 목격한 이들의 복귀는 불가했다. 고문 후유증 같은 직접적 원인도 원인이지만 저 밑바닥에 자리한 죄스러움. '자신보다 마음이 넓고 섬세하며 포용하고 현명하며 살아있을 가치가 있는 누군가를 대신'한 듯 하다는 레비의 말처럼 광주와 광주 밖 사람들은 죄책감에 시달렸다.

설상가상 노태우시절까지도 광주는 불온한 어떤 존재였다.

학생들이 학자들이, 시인·소설가·화가·노동자들이 목숨을 담보로 증언에 나섰다. 광주 안에서 밖에서 또 다른 희생은 그렇게 이어졌다. 수많은 피의 대가, 목숨 값으로 1980년은 겨우 '민주화운동'이라는 제 이름을 얻었던 것이다.

21세기, 2019년 2월, 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홀로코스트보다 더 끔찍하다. 전후 독일에서 일부 우익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집단적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자칭 지식인이라는 자들, 정치인이라는 지도자라는 자들이 흡사 범죄집단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양상이다.



기억은 죽지 않는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정치적으로 악용말라'는 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의 발언은 나치 친위대(SS)와 심하게 겹쳐 보인다.

"이 전쟁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지 간에, 너희와의 전쟁은 우리가 이긴 거야. 너희 중 아무도 살아남아 증언하지 못할 테니까. 혹시 누군가 살아 나간다 하더라도 세상이 믿어주지 않을걸"

"너희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할 것"

2차 대전 기간 유대인 집단학살에 나선 SS가 수용소 유대인들에게 던진 말이다. 끔찍하지 않은가, 저 서늘한 싱크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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