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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 <21>강진읍시장- "우리는 자랑스런 병영상인의 후예다"
입력시간 : 2019. 02.22. 00:00


설대목 직후의 시장은 한산하기만 하는데 상인들의 가슴에는 살내음 주던 손주들에 대한 생각으로 스산하기 이를데 없다.
강진읍시장은 날생선의 푸드덕거림 같은 여느 전통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숙성되고, 정비된 장터다.

적어도 시설 면에서 전통시장 현대화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수산물동과 종합동으로 나뉜 장터는 높다란 아케이드가 설치돼 있어 마치 돔구장을 연상케 하고, 180면의 주차시설이 갖춰져 있다.

비·눈이 와도 상관없고, 찬바람에 쫓겨 종종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음식점은 장밖에 번듯한 가게로 자리하고, 노점마저 장안에서 펼쳐질 만큼 깔끔하다. 여타 전통시장이 천수답이라면 강진읍시장은 경지 정리된 전답이다.

설 연휴가 끝난 지난 9일, 강진읍시장을 찾았다. 강진의 시장 상인들은 '북에는 송상(松商), 남에는 병상(兵商)'이라는 말처럼 개성상인과 함께 조선시대 양대 상권을 형성했던 병영상인의 후예들이다.

병상은 전라병영이 있던 강진지역에서 발달한 상인세력을 지칭한 것으로, 이들은 남쪽 땅 끝에 기반을 두고 있었지만 전국을 무대로 상업활동을 펼쳤다.

상고(商高)의 전설로 회자되는 병영상고와 일제강점기 대부호였던 김충식, 아남그룹 창업주 김향수, 대선제분 창업주 박세정, 동원그룹 회장 김재철 등은 병상의 DNA가 피워낸 꽃이기도 하다.

깔끔하게 지어진 시장통의 먹거리 장터


◆ 설 대목 직후의 장터엔 서늘한 바람만

오감통시장이라고도 불리는 대목 직후의 강진읍시장의 장터는 정비되어 더 한산했고, 상인들은 식구들이 주던 설 연휴의 살내음에 잠겨 한산한 장터를 지켰다.

무와 배추, 당근 등을 가지고 나온 노점상 강성임(83)할머니는 낮 12시가 되어가는 데도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다'고 했다. "물건 팔라고 나왔거니. 할 일없이 집에 있기가 그래서 나왔지"

할머니는 대목 뒤의 장에서 물건 파는 것이야 '까짓 거, 못 팔면 또 어때'했지만 가슴속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감추지 못했다.

"손지들이 열이 넘어. 겁나. 고놈들이 설 쇠러 왔다가 한꺼번에 가고나니 방구석이 운동장만 해졌어. 허전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손주들이 눈에 밟히는데 무·배추가 '그 까짓 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대여섯 걸음 떨어진 곳에서 역시 야채 노점을 하는 최종희(74) 할머니가 언니뻘인 강성임 할머니 곁으로 엉덩이를 옮겨 아까부터 실없는 농을 건넸다. "언니한테 세배 왔는디, 글씨 세뱃돈을 줘야 말이지" 광주에 사는 큰 아들네 집에서 설 쇠고 왔다는 최 할머니가 동변상련으로 던지는 농담이다.

온천으로 유명한 충청도 온양이 고향이라는 할머니는 어찌어찌하다 보니 강진 남자를 만나 이곳까지 왔다고 남의 일처럼 말 했다.

"그럼 시집 잘 오셨네요"라고 농담에 끼어들자 할머니가 "니꾸사꾸지 뭐"라고 응답했다. '니꾸싸꾸'는 배낭이나 등에 메는 가방을 말하는 독일어의 일본어 표기다.

짐짓 물었다. "니꾸사꾸요?" "아, 그 것도 몰라? 등에 맨 가방처럼 신랑이 나를 들쳐 업고 왔당께~" 내가 먼저 웃었고 할머니 두 분도 따라 웃었다.

◆ 우리나라 3대 뻘낙지 중의 하나

조부 때부터 시작한 과일가게를 3대째 가업으로 잇고 있는 시장상인회 이태훈 사무국장(42)은 전통시장의 카드사용 불편을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현금보다는 신용카드 한 장 가지고 다니며 모든 비용을 처리하는데 전통시장에는 아직 그런 문화가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현재 시장에서 카드사용이 가능한 장옥이 전체의 3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올 안에 시장 상인의 90%가 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면서도 가능성을 회의했다.

이 국장은 전통시장의 미래에 대해서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농어촌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 변하는 환경은 전통시장으로서는 버거울 수 있으나 장점을 잘 살리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저렴하고 싱싱하며 신선한 제품 등은 사라질 수 없는 전통시장만의 강점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강진만의 바지락과 개불, 뻘낙지는 예로부터 일품중의 일품으로 알아주는 자랑거리다. 개펄이 간척지 사업으로 급격히 사라지면서 바지락의 생산이 줄어들고 있으나 강진읍시장 새벽장에서는 바지락을 파는 반짝시장이 매일 열리고, 매년 3월이면 뻘낙지로 유명한 사초리에서는 개불축제가 열린다.

강진 사초리의 뻘낙지는 무안낙지·해남낙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뻘낙지 가운데 하나다. 통발에 화랑게를 먹이감으로 넣어 놓은 뒤 하루 정도가 지나 그물을 거둬들이는 작업으로 잡는 사초리 뻘낙지는 작은 머리와 긴 발이 특징이다. 주민들이 잡은 낙지는 신전수협출장소를 통해 서울 등지로 귀한 대접을 받으며 팔려 간다.

온양에서 니꾸사꾸로 시집왔다는 최종희할머니가 언니뻘 강성임 할머니를 찾아와 물건팔 생각은 않고 동병상련의 서늘함을 달랬다.


◆ 사초리 개불을 아시나요?

이에 비해 강진 개불은 바지락이나 뻘낙지와 달리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는 품목이다. 몸이 굵고 크고 살집이 도톰한 강진 개불은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소문내고 싶지 않은 최고의 은밀한 가치로 평가 받는다.

강진지역에서는 개불을 먹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개불은 날 것으로 설겅설겅 잘게 썰어 초장을 발라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반면 강진지역 민가에서는 개불의 둥근 면을 갈라 조미 김 크기로 썬 뒤 끓는 물에 데쳐내어 초장이나 기름장에 찍어 먹는 전통 방식이 내려오고 있다.

살짝 데쳐낸 개불은 겉은 익어 '살던 고향'의 뻘 빛을 닮고, 속은 '살아생전'의 붉은 빛을 지켜낸다. 끓는 물 샤워로 모습을 달리한 개불은 특유의 끈적거림이나 사후경직의 질감이 사라지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입에 감긴다. 씹을수록 입안에는 담백한 맛과 향이 아침 햇살처럼 퍼져간다. 강진 개불을 먹다보면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들을 때 저절로 눈이 감기듯, 그렇게 눈이 감긴다.

하지만 시장의 수산물동 수족관에는 강진산 개불 대신 멍게나 가리비가 가득했다. '섬마을 수산' 이연화 사장(49)은 "멍게나 가리비는 강진산이 아니고 통영 등지에서 가져 온다"며 "다음달 쯤에나 강진산 개불이나 낙지, 쭈꾸미, 꼬막 등이 본격적으로 나온다"고 했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시장나들이도 '제때'를 맞추는 것이 최고의 실속이라는 말일게다.

◆ 시장통의 노른자가 된 시장

시장건너편에는 강진시장 상인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생산자직거래장터가 마련돼 강진의 특산품을 판다. 귀농자나 생산자의 이름을 써 붙인 서리태나 귀리, 쌀, 보리, 팥, 메주가루, 청국장가루, 멸치, 청자찻잔 등이 편의점의 매대 처럼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한번쯤 들려볼 만 하다.

강진읍시장은 시장의 경계가 모호하다. 상인들은 아케이드안의 수산물동과 종합동을 시장으로 한정하여 부르지만 아케이드 밖에 음식점과 과일가게, 젓갈집, 닭집 등이 즐비하다. 상인회 회원도 아케이드 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로 한정되고, 시장의 통계수치도 아케이드 내부에 국한된다. 시장과 시장밖의 상권을 합하여 주민들은 시장통이라 부른다. 마치 시장이 시장통안에 달걀의 노른자처럼 자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시장 안에는 팥죽으로 유명한 '광주식당'과 튀김과 주류를 함께 파는 튀김집 등 식당이 두어개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껏 답사했던 전통시장에서 국밥집이나 족발집 등이 없는 유일한 시장이 강진읍시장이기도 하다.

대신 마주보고 있는 건너편 시장통에 별도의 깔끔한 식당건물이 들어서 있다. 강진 한정식이나 숯불 불고기를 맛보고 싶다면 시장통 먹거리장터로 나가야 한다. 하긴 시장이 시장통이고, 시장통이 시장인데 먹거리장터가 밖에 있으면 어떠하며, 안에 있으면 또 어떠하랴. 조영석 시민전문기자/kanjoys@hanmail.net

강진의 먹거리& 볼거리

장터 문어


강진만큼 볼거리와 먹거리가 풍부한 지역도 많지 않다. 축구팀에 비유하자면 11명의 선수 전원이 손흥민이다. 다만 스스로 손흥민인줄 모르거나 또는 구단의 세력이 열세일 뿐이다.

우선 먹거리는 강진 한정식을 들 수 있다. 남도 음식문화의 상징이 되고 있는 전주한정식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 육해공이 망라되고 상에 오르는 해산물을 여느 지역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풍성하고 신선하다. 길가의 음식점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생우럭탕도 강진에서는 그 맛이 유별나다. 병영면의 돼지불고기 맛집에는 관광버스를 타고 온 손님들이 줄을 선다.

특히 닭과 문어, 전복 등에 각종 한약재를 더해 만든 회춘탕은 강진에서만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관광을 겸한 볼거리는 먹거리를 능가한다. '북의 소월, 남의 영랑'으로 일컬어지면 현대 서정시의 지평을 연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있고, 생가 인근에는 시인의 대표작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테마로 한 세계모란공원이 조성돼 있다.

고려청자의 산실인 청자박물관에서는 매주 토요일 '명품청자 토요경매'가 열리고, 한국민화박물관에는 4천500여점의 조선시대 민화와 성인들을 위한 춘화가 전시되고 체험할 수도 있다.

유배 왔던 다산 정약용의 체취가 남아 있는 백련사의 동백나무숲은 겨울이면 꽃으로 붉고, 꽃이 지면 반짝이는 잎으로 빛난다. 가우도 둘레길을 연인과 함께 걸으면 변치 않는 사랑이 찾아오고, 출렁다리위에 서면 바람에 날라 가는 묵은 더께를 볼 수 있다. 밤이 더 아름다운 미항인 마량항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강진에서 병영면의 전라병영성과 하멜 기념관을 들리지 않으면 강진을 가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조선시대 전라도와 제주도를 통괄한 육군의 총지휘부가 있던 병영성과 우리나라를 최초로 서양에 알렸던 하멜을 기리는 하멜기념관은 미래 가치적 측면에서 강진관광의 으뜸이다. 남도 끝이라는 지역적 한계로 인해 성터와 기념관은 비록 초라하지만 성터에 부는 바람이 왜 서늘한지를 느낀 것만으로도 강진여행은 충분하다.

많은 볼거리 만큼 강진은 매년 열리는 축제도 많다. 강진청자축제(7월말~8월초), 마량미항축제(추석 무렵), 전라병영성축제(4월), 영랑문화제(4월), 다산제(10월), 강진만 갈대축제(10월), 남도음식문화축제(10월), 메뚜기축제(9월), 사초개불축제(3월)등이 열린다.

강진읍시장

장터 사진


오일장과 상설시장이 통합된 형태로 운영된다. 오일장은 4일과 9일자에 열린다.

1895년 강진군이 강진현으로 개편되면서 강진 5일시장이 개장됐다. '읍내장'이나 '현내면장'으로 불렸으며, 강진읍 신성마을 배드리에 있다하여 '배드리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1935년 현 위치인 동성리 일대로 이전하여 1976년에 상설시장이 추가 개장했다.

2010년 현대화사업을 통해 기존의 장옥을 철거하고 어물전동과 종합동의 102개 점포를 갖춘 신규시장으로 재단장 됐다. 2018년 현재 302개 점포(장옥 102, 노점 200)에 320명의 상인(노점 200명 포함)이 종사하고 있으며, 60대 이상이 179명이다.

오감통시장이라고도 불린다. 풍성한 남도의 먹거리(미각)와 고품질의 음악(청각), 아름다운 시장 디자인(시각), 다양한 체험(촉각), 전통시장의 향수(후각) 등이 만족하는 시장이라는 의미다.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위해 시장에 음악을 접목한 시장이다. 시장 건너편에 공연 무대가 설치돼 있다.


조영석        조영석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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