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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의 삶, 장터의 맛 <22·끝> 담양오일장- 불편함이 오히려 아름다운 시장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제방은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숲길이 되었고,
이제 관방제는
또 다른 몽룡과 춘향의 사랑이
범람하는 공간이 되었다.
담양오일장은 오래전부터 이런
입력시간 : 2019. 03.29. 00:00


“새끼들은 어쩌면 다 이렇게 이쁜지…” 봄날의 장에서는 모종가게의 각종 어린 싹들이 초원을 이루고(왼쪽), 담양교 위에는 묘목상들이 가지고 나온 나무들로 숲을 이뤘다.(아래)
담양읍에는 조선 인조 때인 1648년 이 고을 부사였던 성이성이 쌓은 오래된 둑이 있다. 담양천이 매번 범람하여 민가에 피해가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해 만든 제방이다. 관방제다. 관비(官費)를 들여 축조한 둑이라는 뜻이다. 둑 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 백 년 수령의 푸조나무와 팽나무 등이 담양천과 어울려 풍치를 더한다. 성이성은 소설 ‘춘향전’에 나오는 로맨스가이 이몽룡의 모델로 알져진 인물이기도 하다. 소설속에서는 춘향의 성(姓)이 성(成)씨이니 이 또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각설하고, 하천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제방은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숲길이 되었고, 이제 관방제는 또 다른 몽룡과 춘향의 사랑이 범람하는 공간이 되었다. 담양오일장은 오래전부터 이런 제방위의 둑길로 사람들이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매 2일과 7일에 열린다. 담양읍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로를 따라 가다보면 담양천을 건너는 만성교를 만나게 된다. 담양오일장은 이곳 만성교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제방을 따라 담양교까지 600m가량 펼쳐진다. 만성교에서 동쪽으로는 관방제림과 메타세쿼이아길로 이어지고 다리 건너편에는 죽녹원이 있다.

담양교 위에는 묘목상들이 가지고 나온 나무들로 숲을 이뤘다.


◆장터에서 만난 배호

담양오일장에는 꽃샘추위의 찬바람 속에서도 봄이 성큼 왔다. 담양교 위에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묘목상들의 각종 나무들로 숲을 이루고, 모종가게 앞에는 파릇한 어린 새싹들이 초원을 이뤘다.

노점 묘목상에는 비파, 호두, 오디, 자두, 포도, 복숭아, 참가죽, 해당화, 꾸지뽕, 백목련, 자목련, 금목서, 은목서, 천리향 등 아는 이름의 나무며 수종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다리위에서 울창했다. 키 큰 동백나무는 붉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복숭아와 살구나무는 야윈 몸에 키만 훌쩍 컸다. 품종과 수령에 따라 세 그루가 1만원에 팔리기도 했고, 비싼 수종은 한 그루에 6만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담양교 다리 위 묘목상 건너편에서는 알록달록한 깃털의 관상용 새들이 봄 햇살을 쬐고, 새장 옆 가축장에서는 토끼와 강아지, 오골계 등이 봄바람에 떨었다.

가요 테이프를 파는 트럭 노점에서는 배호의 히트곡 ‘장충단공원’이 굵은 저음으로 흘러 새장과 가축장까지 갔다.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울고만 있을까…’ 참았던 울음이 곧 터질 것만 같은 배호의 슬픈 음색이 가축장의 숨탄것들과 묘한 조화를 이뤘지만, 그의 노래 테이프는 팔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잡화점이라고도 불리는 만물상회에서는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물건들이 팔리고, 새봄의 각종 모종도 예외가 아니다.

◆ 장터가 초원으로 바뀐 이유는?

모종가게에는 상추가 주종을 이뤘다. 파란 놈, 푸른 놈, 새파란 놈, 붉은 놈, 검붉은 놈, 기미 낀 놈, 한잔 걸친 듯 불콰한 놈 등 상추모종은 각양각색이다. 눈치를 보아가며 카메라의 셔터를 가만히 눌렀다. 무턱대고 사진을 찍다 항의를 당한 경험이 몇 번 있어서다.

“이쁘지요? 잘 찍어서 홍보해주시오” ‘장터첫집 만물상회’ 김묘래 사장(70)이 언제 보았는지 웃으며 다가왔다.

“이게 뭔지 알것소? 처음 보제? 그게 바로 울릉도에서 유명하다는 명이여” “이건 도라지이고, 이건 삼채”

부추 잎을 닮은 삼채 모종은 제법 컸으나 이제 방금 땅을 뚫고 나온 듯한 명이와 도라지 모종은 손톱만큼 했다. 명이나물과 도라지야 모를리 없지만 너무 작은 탓에 설명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마 싹인데 2년을 키운 것이여. 씨를 뿌리면 처음 나온 싹이 마치 바늘 같애. 명이는 고급나물이잖어. 저래 뵈도 6년간 키운 것이여” 김 사장은 묻지 않은 질문에 친절히 답했다.

지나던 아주머니가 호박 모종이 있느냐고 물었고, 김 사장은 호박은 아직 빠르다고 했다. 호박이나 오이, 가지, 고추 등 열매를 맺는 것은 시기가 조금 이르고, 지금은 잎채소를 심을 때라고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명이와 상추 모종을 사면서 “지금 심으면 얼어 죽지 않느냐”고 물어 본 뒤 바지 호주머니에 두 손을 찌른 채 멀쭉하게 서있던 남편을 한 번 쳐다봤다. 남편이 지갑을 꺼냈다. “새끼들은 어쩌면 다 이렇게 이쁜지…” 돌아서서 가는 아주머니의 한 마디가 귓전에 남았다.

담양장은 시장현대화와 동떨어져 있지만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이 오히려 아름다운 장이다.


◆시장의 인연

시장 초입, 만성교 근방에서 남다른 인연의 시장 상인과 재회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재작년 10월 곡성기차마을 전통시장에서 만났던 ‘곡성 약용작물 농장’ 조인숙 사장(61)이다.

곡성기차마을 전통시장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종씨(宗氏)였고, 항렬을 따지니 누님뻘이 됐다. 내친김에 유행가 가사처럼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한 참 가야 하는 조그마한 섬이란다. 그녀의 고향을 듣는 순간, 어쩌면 어린 시절 함께 맡았을 섬마을의 갯내음이 기억 속에서 밀려왔다.

그 반가움을 굳이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라면 반갑다’고 하지 않던가. 까마귀에 비유할 수 없는 그녀를 곡성, 옥과, 담양시장에서 빠짐없이 만났으니 인연은 인연일 테다.

조 사장의 노점에서 빨간 열매가 두 개 달린 관상용 딸기 화분 하나를 골랐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햇볕만 잘 들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어. 딸기가 열려 익으면 아까워도 따 먹어야 해. 그래야 딸기가 다시 열려”

그녀는 먹어 보라며 옆 화분에 열린 빨간 딸기 하나를 댕강 따더니 내게 주었다. 새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취재가 아니더라도 장날에 놀러오라”며 그녀가 쪽파와 담배상추 몇 단을 동생에게 안겼고, 동생은 장터를 되돌아가 찐빵이며 떡을 사서 한사코 사양하는 누님의 거칠어진 손에 쥐어줬다. 연재가 마무리되어도 가야 할 장이 내게 생겼다.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고 했는데 장터에서 만난 고향 누님이야 두말 할 필요가 있겠는가.


◆ 사흘 일하고 이틀 쉬는 정년 없는 직장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말아 먹고’ 오일장에서 김과 부각, 자반 등을 파는 한상수씨(62)는 ‘장돌뱅이’ 10년차다. 송정오일시장과 비아오일장, 담양오일장 등을 돌며 사흘 일하고 이틀 쉰다. 한 씨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더없이 만족한다고 했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이 현역에서 은퇴했어. 근데 나는 사흘 일하고 이틀을 쉬면서도 정년이 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잖아”라며 웃어보였다. 그는 쉬는 날이면 친구들을 만나 부담 없이 막걸리라도 살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느끼는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덧붙였다. 누군들 그가 느끼는 행복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0대 중반 쯤 되어 보이는 아낙이 그의 노점 앞에 발길을 세우더니 좌판의 김을 가리키며 가격을 물었다. 그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랑을 중단하고 “이 건 한 톳에 이만원이고, 이 건 이만오천원”이라고 응대하자 이번에는 아낙이 다시 어느 것이 더 맛있느냐고 되물었다. 그가 이만오천원 짜리 김을 가리켰고, 아낙은 말없이 이만오천원짜리 김 한 톳을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갔다. 아낙의 당연한 질문은 한 씨에 대한 신뢰와 5천원을 더 지불할 만한 가치에 대한 확인이었을 테다. 3월 중순의 시장에는 냉이와 달래, 쑥 등 봄나물이 가득했다. 5천원어치만 사도 나눠먹을 사람을 떠올려야 할 만큼 푸짐하다.

방풍나물 한 바구니를 샀다. 언젠가 여수 금오도 여행에서 먹었던 방풍나물 부침개가 생각나서다. 노점 아주머니가 덤으로 서너 주먹을 더 얹었다. 덤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으나 아주머니는 “얼른 폴아 불고 들어 갈라고 그라요”라며 덤의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담양오일장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시장현대화 사업에서 비켜나 있다. 대부분의 시장이 고객편의를 위해 별도의 주차장을 마련하고 품목별로 구획화하거나, 눈비를 피할 수 있도록 아케이드를 설치하였으나 담양오일장은 이러한 현대화 사업을 거들어 보지도 않는다. 체계화된 상인회도 없다. 편리함보다는 자연스러움과 불편함이 오히려 아름다운 시장이다.

조영석 시민전문기자 kanjoys@hanmail.net

'아~맛나!'-치즈호떡과 잔치국수

‘호떡 귀신’의 노점에서 맛본 치즈호떡은 귀신도 반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맛이다.


담양오일장을 가다보면 사람들이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먹거리 노점이 몇 군데 있다. 시장이 형성된 만성교와 담양교 사이의 중간쯤에 있는 ‘호떡 귀신’노점도 그 중의 하나다. 줄선 사람들의 입에서는 ‘호떡집에 불났다’라는 말이 저절로 튀어 나온다.

기본 호떡인 꿀 호떡은 3개에 2천원이고, 이 집의 특별한 호떡인 잡채호떡은 1개에 1천500원, 치즈 호떡은 1개에 2천원이다. 아내가 메인 쉐프이고, 남편은 종이컵에 호떡을 담아주는 역할로 분업을 한다. 아내는 호떡을 구우면서 자꾸 땜질을 한다. 호떡가루에 찹쌀성분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밀가루와 달리 귀퉁이가 자꾸 터진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줄 선지 10여분 만에 치즈 호떡을 입에 물었다. 호떡과 치즈가 한 통속이 되어 입안을 농락한다. 한 입 베어 물고 입에서 호떡을 떼면 치즈가 가는 실처럼 늘어져 끊어질 생각을 않는다. 감겼던 눈이 깜짝 놀라 크게 떠진다. 시쳇말로 ‘지금까지의 호떡 맛은 잊어라’ 라고 할 수 있다.

딸기 모종. 실내에서 키우려면 빨갛게 익은 딸기를 아깝더라도 따 먹어야 한다.


호떡으로 출출함을 달랬다면 이제는 국수집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국수의 거리’가 있을 만큼 담양에서는 국수가 유명하다. 잔치국수나 비빔국수다.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후배의 귀뜸에 따라 담양교 근방의 ‘대잎손만두 국수’가게를 찾았다. 치즈호떡에 놀란 미각이 이번에는 잔치국수에 한 번 더 놀랐다. 잔치국수의 면발이 쫄깃하고 찰질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4천원이다.

‘장터의 삶, 장터의 맛’을 이번회로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영석        조영석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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