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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쿠바에서 단상
입력시간 : 2019. 04.01. 00:00


허탁 전남대 의과대학 교수

요즘 우리나라 국민들은 쿠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류준열의 예능 ‘트레블러’와 박보검의 드라마 ‘남자친구’는 쿠바의 열정과 아름다움을 소개하며 관심을 이끄는 중심에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쿠바는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처럼 그렇게 가게 됐다. 작년 9월 쿠바가 관심을 받기 전 노회장님이 술 마시다 불쑥 “허교수! 쿠바 가고 싶네”라고 말씀하시자, “그럼 갑시다” 라고 바로 응답했다.

서로 일정을 조정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난 3월 18일 아바나에 도착했다. 28℃의 따듯한 날씨에 느긋한 시민들, 그리고 다양한 양식의 유럽풍 건물들, 거리를 다니는 형형색색의 50년대 올드카는 오랫동안 시간이 흐르지 않는 카리브해의 낙원에 온 듯 착각을 하게 했다.

사실 사춘기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그 쿠바의 작은 어촌, 코히마르를 동경 했다. 험난한 시련을 극복하는 경험 많은 노인어부의 사투와 허무한 소설의 종결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의예과 다닐 때 조심히 읽었던 ‘체 게바라’는 중산층의 평범한 의대생이 환자 치료를 넘어서 병든 사회를 치료하고자 혁명에 뛰어든다. 그 일생은 평범한 예과생이던 필자에게 현대판 삼국지의 영웅이었다.

일행 3명은 그 유명한 ‘체 게바라’ 티를 사 입고 귀에 익은 쿠바음악이 흐르는 아바나거리를 돌아 다녔다. 1492년 콜럼버스의 침략 이후 오랫동안 제국의 식민지였고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미국이 고립시켰던 아메리카 대륙의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는 경직되고 어색할거라는 선입견과 달리 환경만큼 따뜻한 시민들의 시선에 마음이 금방 편안해졌다.

아바나 다음으로 방문한 코히마르는 어디선가 소설의 등장인물, 노인과 소년이 지나갈 것 같은 ‘노인과 바다’ 그대로였다. 유네스코가 전체 도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트리니다드는 500년 동안 알록달록 그 예쁜 모습을 지켜왔다. 카리브해의 아름다운 휴양지 바라데로는 자연 그대로이다. 강원도의 풍경을 떠올리는 비날레스는 인디언의 전통을 이어받아 담배농사로 시가를 만든다. 시골거리를 다니는 주요 교통수단은 마차이고 카우보이는 여전히 말을 타고 다닌다.

쿠바를 여행하다 문득 의문이 생겼다. ‘혁명의 나라에 왜 새로운 변화가 없는 걸까?‘ 쿠바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500년 전 그리고 1959년 혁명 전후의 모습에서 변한 게 없다. 사회주의 혁명의 그 이상은 아름다웠으나 실현되지 못하고 국가의 체계는 낙후되고 국민은 모두가 가난하다. 쿠바는 혁명초기 의욕적인 개혁을 이뤘으나 경직된 사회주의체계에서 변화하지 않고 지속적인 개혁과 개방에 소홀했다.

시앤푸에고스에서 트리니다드로 가는 길에 붉은 땅게들이 숲속을 나와 무수히 도로를 건너 바다로 가고 있었다. 일부는 차에 깔리고 새의 먹이가 되었다. 땅게는 원래 바다에 살았으나 수백만 년 전에 바다를 떠나 숲속에 정착하는 혁명을 이뤘다. 그러나 매년 3월말이 되면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 위해 10㎞나 떨어진 바다까지 행진한다. 동작이 느리면 강렬한 태양에 말라 죽거나 새의 먹이가 되기 쉽다.

3년 전 우리는 세계가 주목한 촛불 시민혁명을 이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의 겉 색깔은 변했으나 쿠바의 올드카처럼 매연과 미세먼지는 여전히 배출되며 효율의 개선도 보이지 않는다. 혁명은 이뤘지만 개혁적 변화는 없다. 정치·경제·사회·안보 등 각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일부 정부 고위인사와 장관 후보자는 촛불정신에 어긋난 일처리와 경력을 갖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촛불혁명으로 국민의 기대 속에 탄생했고 집권 초기 80%가 넘는 지지율을 받았다. 집권 중반기에 들어선 지금도 촛불정신을 다시 마음에 새기고 개혁을 위한 노력에 매진해야 한다. 개혁은 혁명보다 힘들다. 개혁의 시작은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물을 등용하고 시스템을 끊임없이 가다듬어야 한다. 트리니다드로 가는 길에 만난 땅게들은 숲속에 정착하는 혁명보다 바다로 가는 길이 더 힘들고 가혹하다. 우리에게도 촛불혁명보다 개혁의 바다로 가는 길이 더 험난하지만 생존을 위해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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