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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노트르담 대성당
입력시간 : 2019. 04.17. 00:00


빅토르 위고(1802~1885)는 고전문학의 걸작,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꼽추)’를 통해 아름다움과 추함을 명징하게 비교했다.

라 에스메랄다는 아름다운 집시 처녀다. 성당의 종치기인 콰지모도는 등뼈가 휘고 가슴뼈가 앞으로 툭 불거져 나온데다 머리는 양 어깨에 파묻힌 곱사등이다. 제멋대로 뒤틀린 절름발이, 무사마귀가 나 있는 왼쪽 애꾸눈까지 보기에도 흉측한 몰골을 가졌다. 그들 사이에 끼어든 성당의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는 라 에스메랄다의 미모에 눈이 멀어 억눌러 왔던 관능적 욕망을 병적으로 분출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이 바로 ‘노트르담(Notre-Dame) 대성당’이다. 중세 종교예술이 집결된 ‘고딕의 보물’로 평가받는다. 파리의 중심을 가로 질러 흐르는 센강의 시테섬에 자리잡고 있다. 퐁뇌프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대성당은 웅장하고 장엄하기 이를데 없다.

1163년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도쉴리에 의해 착공돼 1345년경 공사가 끝났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대성당은 역사적 사건의 무대였다. 성왕 루이가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 등 성유물을 이곳에 임시로 안치(1239년)하고 필리프 4세는 최초의 3부회의를 개최(1302년)했다.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1455년), 앙리4세와 마르그리트 왕녀가 종교 내란 평정을 위한 정략결혼(1572년)이 거행됐다. 이밖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즉위식(1804년) 등 수많은 중요 행사가 열렸다.

대성당은 몇차례의 수난을 겪었다. 루이 15세가 성당이 어둡다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투명한 유리로 바꿔버렸다. 또한 자신의 마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성당의 출입문을 넓히면서 본 모습을 잃어 시민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 대혁명(1789년~1795년)이 일어났을 때 혁명 당원들이 대성당 일부를 파괴하는 바람에 폐쇄되기도 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가 인기를 끌면서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백년전쟁과 세계대전의 포화도 견뎌냈던 대성당의 지붕과 첨탑이 15일 발생한 화재로 무너져 내렸다. 1천년에 가까운 인류 역사를 오롯이 담아온 건축물이 소실됐다니 황망하고 참담하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 숭례문(국보 1호)을 화재로 잃었던 경험이 오버랩 된다. 김영태 주필kytmd8617@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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