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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특별기획-'대한독립 만세' 현장을 찾아서 5 곡성장터·3·1운동기념비
시골 장터 ‘독립 횃불’…남녀노소 ‘한마음’
곡성 보통학교 훈도 신태윤 등 주도
서당서 역사 강의·만세운동 참여 독려
장날 태극기·격문 배포…독립 선언
3·1운동 기념공원에 기념비…의의 다져
입력시간 : 2019. 05.01. 00:00


곡성 단군전에 마련된 3·1운동 기념탑.
곡성 3·1만세운동이 발생한 곡성 옛 장터는 이곳이 옛 장터였다는 흔적만 남은 채 잊혀진 상태다.


3·1운동 기념 행사.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곡성지역민과 학생들이 기념식(사진 위)과 함께 독립만세운동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다.


일제의 침탈에 호남 사람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곡성지역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곡성 3·1만세 운동은 신구 학문을 다양하게 배운 의식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장날 장터에 모인 남녀노소가 한마음 한 뜻이 돼 대한독립을 외쳐 의미를 더한다. 곡성 3·1만세운동이 발생한 역사 현장은 현재 야속한 세월의 영향으로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3·1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곡성 3·1만세운동의 의미를 다지고 있어 뜻깊다.



◆곡성 장날 장터서 만세 행렬

곡성지역 3·1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0일 발생한 광주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광주 등 3·1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지만 곡성에서는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지 못한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준비 작업을 거쳐 군중들과 함께 추진됐다.

곡성군사에 따르면 곡성 3·1만세 운동은 당시 곡성 보통학교 훈도였던 신태윤이 3월초 전국의 만세 시위 소식을 듣고 곡성에서 시위를 계획하면서 본격화됐다.

또 학교 근처에서 정래성, 김중호, 양성만, 박수창, 김경석, 김기섭, 김태수 등에게 “현재의 조선의 실정은 태평하게 고기잡이나 즐길 때가 아니다. 이미 남원·담양의 각 보통학교 생도들은 솔선해서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연설을 하고 만세시위를 독려했다. 이들은 신태윤과 함께 뜻을 같이하고 만세시위를 준비했다.

정래성은 신태윤의 지시에 따라 곡성에서의 3·1만세운동을 알리는 취지의 문서 20매를 작성해 정용태에게 전달했다. 또 같은달 26일 정래성 집에서 회합해 시위 날짜를 다음 장날로 정하고 시위운동에 필요한 태극기와 격문을 제작하는 등 만세시위를 추진했다. 특히 신태윤은 참가자들에게 역사의식을 강조해 조선의 역사에 대해 서당에서 직접 강의하며 3·1만세운동의 동참 의미를 다졌다.

마침내 신태윤과 보통학교 학생들은 곡성읍 장날인 3월 29일 태극기를 들고 앞장서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곡성 3·1만세운동의 시발이었다.

보통학교 학생들도 신태윤을 따라 만세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동료 학생은 물론 마을 유지에게 독립만세시위에 동참할 것을 역설했다. 그러다가 일본 경찰의 무력진압으로 신태윤 등 학생 4명은 현장에서 체포됐다. 특히 시위를 주도했던 신태윤은 징역 2년형이 확정돼 옥고를 치렀다.

곡성 3·1만세운동의 여파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같은해 4월 4일에는 남원읍 만세운동으로 여러 명이 순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곡성읍 등 남원 인접 지역 주민 100여명이 조문을 위해 강을 건너던 중 일본 헌병의 저지로 건너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운집한 주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저항하기도 했다.

 

◆옛 장터는 사라지고 단군전서 민족정신 고취

곡성 3·1만세운동이 발생한 옛 장터는 현재 사라지고 없는 상태다. 보통학교 학생들과 장터에 모인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던 역사 현장 의미는 해당 장소가 옛 장터였다는 사실만 남은 채 잊혀진 상태였다.

다만, 곡성 3·1만세 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신태윤의 영향으로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조성된 단군전에 곡성 3·1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함께 세워져 곡성 3·1만세 운동의 의의를 다지고 있다.

곡성 3·1만세 운동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던 신태윤의 영향이 컸다.

담양이 고향인 신태윤은 곡성공립보통학교의 훈도로 신구 학문을 널리 배운 학도였다. 민족정신도 남달라 그는 3·1만세운동 주도자로 옥고를 치른 이후에도 민족운동에 몸을 바쳤다.

그는 특히 1931년 곡성군 곡성읍 봉황대에 단군전을 조성해 단군 조선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큰 역할을 도맡았다. 또 매년 3월 15일 어천절과 10월 3일 개천절에 춘추봉제를 올리며 민족의식을 고양했다.

단군전을 통해 현재까지 3·1운동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다채롭게 진행하며 남다른 의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단군전은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왕검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경내에는 3·1운동기념비와 설립자 백당기념관이 있다. 해방 후인 지난 1952년에는 단군전을 중수하고 1977년에 주위 담장 및 출입문을 만들어 면모를 갖췄다. 지난 2005년에는 한국 등록문화재 제228호로 지정돼 국내 중요 문화재로서 제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념행사 추진…독립정신 기억

곡성에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3·1운동기념비가 세워진 단군전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벌였다.

곡성군은 지난 3월 1일 3·1운동 기념공원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기념식은 곡성 3·1만세운동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시비제막과 함께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이 참여한 만세삼창 태극기 시가행진 등 행사가 마련됐다.

특히 만세삼창 태극기 시가행진에서는 3·1운동 기념공원에서 곡성군청까지 행진하며 그 날의 피맺힌 대한독립만세 함성을 재현하고 의미를 다지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시가행진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이뤄져 눈길을 모았다.

곡성군 관계자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곡성 3·1만세 운동의 의미를 다시한번 다지는 기회가 됐다”며 “순군선열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억하고 그 가치를 기념하는 활동을 다양하게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김옥경·도철원·한경국·이영주·오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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