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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무너진 베를린 장벽에서 통일을 생각하다
입력시간 : 2019. 05.01. 00:00


이정희 한국전력 상임감사 전 광주지방변호사회 회장

최근 방문한 베를린에서 세상에서 가장 길고 감동적인 그림을 보았다. 그것은 바로 베를린 동쪽 슈프레 강을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약 1.3킬로에 달하는 베를린 장벽에 그려진 벽화다. 분단의 고통과 가슴아픈 사연들을 담고 있는 차가운 냉전의 벽이 이제는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형형색색의 벽화들로 가득 찬 아트 갤러리로 변해 있었다.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졌다. 여전히 분단되어 있는 우리나라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픈 과거마저 예술로 승화시킨 독일에 대한 부러움이었을까.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둘로 나뉘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상이한 이데올로기 아래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반면, 동독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더구나 독재체제에서 개인의 자유마저 박탈당하자 많은 이들이 서독으로 탈출하기 시작했고, 특히 서베를린으로의 탈출이 가장 심했다. 이를 막고자 동독정부는 1961년 베를린 시내 한 가운데에 길이 43킬로에 달하는 두터운 장벽을 건설했다.

‘죽음의 지대’라고 불리던 이곳에서 1,245명이 서독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사망했고, 체포된 사람도 6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18살이었던 동독 청년 페터 페히터(Peter Fechter)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분단의 비극을 처절하게 보여준다. 페히터는 장벽을 넘다 동독병사의 총에 맞아 동독지역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 서독군은 총격이 두려워 붕대를 던져주기만 했고, 동독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동안 피 흘리며 신음하다 죽어갔다.

언제까지나 견고할 것 같았던 이 장벽이 무너진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천지개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화적 소통과 경제적 지원을 계속해 온 서독 정부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었다. 1969년 서독의 총리로 당선된 빌리 브란트는 ‘접근을 통한 변화’를 기치로 동방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대내적으로는 동독과 대외적으로는 소련을 비롯한 주변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축으로 했다. 브란트 정부는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동독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썼고, 동·서독 간 자유로운 여행을 보장하고 무역 및 문화교류의 확대를 통해 양 국민간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이 양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고, 결국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만 것이다.

통일 이후 8000만 명으로 불어난 인구는 내수시장경기에 활성화를 가져왔다. GDP 규모도 지속적으로 늘고,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고, 수출도 배 이상 증가하였다. 반면 막대한 통일비용과 통일 이후 구 동·서독간 빈부격차와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오랜 진통을 겪었다.

독일의 통일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우리 역시 상호존중과 신뢰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독일의 통일과정을 잘 살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통일비용 준비, 남북경협의 단계적·전략적 접근, 4대강국과의 통일에 우호적인 환경 조성, 남북한 사회통합 노력 등이 필요할 것이다.

“엄청난 통일비용을 감당 못 할 것이다, 남북경협은 퍼주기”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통일비용에서 국방비 등 분단비용을 빼고 대신 9.25%내외의 고도성장을 감안하면 ‘통일은 남는 장사’라고 주장한다. 또 “통일을 이루려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그 방법은 오직 퍼주기”라고 주장한다. 오랜 경륜에서 나온 그의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남·북한이 아무리 준비를 잘 해도 훗날 통일의 부작용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평화적인 교류협력 사업을 진정성 있게 지속한다면 굳게 닫힌 북한의 문도 열릴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반드시 ‘핵무기 없이 평화롭고 번영된 한반도’를 만들어 가야 한다.

언젠가 그러한 날이 와서 우리의 삼팔선도 독일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처럼 전 세계인들에게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전하는 관광명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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