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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새로 쓰는 전라도 마한사 <2>백제와 통합한 馬韓
마한 세력 독자적 문화, 독립왕국 유지 증거
입력시간 : 2019. 05.07. 00:00


마한 왕국의 위용을 실증한 왕관(신촌리 고분)
馬韓史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과 반대로 한국고대사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다. 광주교육청이 발행한 인정 교과서(2018)가 마한사를 누락한 것이 그 예라 하겠다. 전라도 정명 천년 기념사업의 하나인 ‘전라도 천년사’ 목차에도 왕인박사 서술항목은 보이지 않고, 부안 ‘죽막동’은 있어도 ‘남해신사’는 없으며, 영산강 유역 마한왕국을 ‘옹관묘 사회’, ‘고총고분 사회’로 하여 정치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마한 남부 연맹과 통합한 백제의 행정구역에는 특징이 있다. ‘월나군’(영암), ‘발라군’(나주), ‘도무군’(강진), ‘복홀군’(보성)·‘파부리군’(보성복내) 등 ‘군(郡)’ 규모의 행정구역이 설치된 곳과 3세기 후반 중국사서에 모습을 보였던 마한 왕국들이 위치했던 곳이 일치하고 있다. 연맹체들이 지역 내에서 세력 교체는 있을지언정 각기 독자적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광역의 정치적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마한 남부 연맹들은 세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분립적인 경향이 지속되고 있었다.

영산 지중해 연안 정치체들은 비교적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영암 시종, 나주 반남· 복암리 일대의 거대 고분들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영산강식 토기’는 마한 남부 연맹체의 강한 연대감의 상징이다. 5세기에 고구려에 밀리고 있던 백제가 이들 지역을 군사적으로 병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성왕 대’에 마한이 백제와 통합되었다는 주장은 임영진 교수 등 일부 연구자들도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대등한 수준’의 1:1 통합이라는 필자의 주장과 달리 ‘백제에 의한 무력 정복’을 이아기 하고 있다. 마한 남부 연맹은 백제와 통합된 것일까? 병합된 것일까?

병합설은 369년 백제가 마한을 병합하였다는 이병도의 주장과 함께 4세기 후반 병합된 마한이 5세기에 들어 자치권을 얻었다가 5세기말 동성왕 대에 직접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주장 등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말하자면 고구려의 압박으로 마한 지역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이 약화된 5세기에 들어 마한 동부 지역은 가야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갔고, 서남부 지역은 대가야 및 왜와 관계를 강화한 마한이 자치권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백제는 이들 토착세력들에게 왕후를 봉작하였는데 신촌리 9호분 출토 금동관이 그 증거라는 것이다. 5세기 말 백제가 다시 직접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것에 대한 마한의 반발을 동성왕이 친정(親征)하여 복속시켰다는 것이다.

이 논리가 타당하다면 4세기말 백제에 복속된 마한 세력이 ‘영산강식 토기’와 같은 독자적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신촌리 9호분 금동관도 백제가 아닌 가야나 왜 계통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곧 토착적 전통을 바탕으로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한 이 지역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다. 독립 왕국이 유지되고 있었던 증거라 하겠다. 백제가 사여한 ‘위세품’이 아니라 마한왕의 ‘왕관’이었다. 백제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하겠다.

응준 명문 녹유탁잔(복암리 1호 출토, 전남대 박물관 소장)


한편, 자치권을 부여받았던 전남 지역 대부분이 498년 동성왕의 무진주 원정으로 백제의 지배하에 들어갔지만, 영산강 내해의 마한 세력은 6세기 중반까지 편입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한강 유역의 백제에 밀려 남하한 마지막 마한 세력이 전북 서남부에서 전남 서부로 연결되는 서해안권, 나주를 중심으로 한 영산강 내해권, 고흥반도를 중심으로 한 남해안 등으로 커다란 권역을 이루며 6세기 초까지 단절 없는 발전을 지속하며 백제와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전남 마한 세력이 6세기 중엽까지 백제로부터 독립된 위치에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입각점은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남해안권의 마한이 백제와 왜의 교류에 협조하지 않자 백제가 먼저 이 세력을 정복하였다는 것이다. 백제가 ‘언제’ 정복하였는지 언급이 없다. 백제가 남해안을 정복하자 서해안 일대의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 등이 놀라 스스로 항복하였다는 추가 설명에서 대략을 짐작할 따름이다. 근초고왕이 침미다례를 공격하자 비리, 벽중 등이 놀라서 스스로 항복하였다는 일본서기 기사와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가 남해안권 및 서해안 일대까지를 정복한 시기를 4세기 후반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에 따르면 6세기 초까지 단절 없이 세력을 유지한 세력은 전남 전역의 마한이 아니라 영산강 내해의 마한 세력뿐이고, 나머지 지역은 4세기 말 이미 백제의 수중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더욱이 영산강 내해의 왜소한 마한 세력으로 축소된 마한 세력이 1세기 이상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왜의 큐슈 세력과 제휴가 있었기 때문이라 하여 왜의 영향력을 강조하고 있다. 529년 큐슈 세력이 야마토 정권에 흡수되는 정치 변동으로 영산강 내해의 세력이 더 이상 큐슈 세력과 연대가 불가능해지자 자구책으로 백제에 투항하였다는 주장에서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영산강 내해 세력이 백제에 포위된 채 왜소한 세력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면 시종, 반남, 복암리 등의 대형 고분들을 축조한 정치 세력들을 설명할 수 없다. 시종 옥야리의 원형과 방사상 형태가 조화된 방대형 고분은 영산 지중해 지역이 문물이 교류되는 중요한 거점이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그밖에도 이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 수많은 유물들이 영산 지중해 이들 지역이 백제보다는 왜나 가야 심지어 신라와 교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들 지역이 백제 영향과 무관함을 알 수 있겠다.

영산 지중해 세력이 큐슈 지역과 연대를 하다 큐슈세력의 붕괴로 백제에게 흡수되었다는 것은 왜의 도움으로 마한 세력이 유지되었다는 논리와 다름없다. 이러할 때 영산강식 토기와 같은 무수히 많은 이 지역의 독자적 특질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나아가 세력이 약화된 마한 세력이 자구책으로 백제에 일방적인 통합을 강요당하였다면, 성왕이 마한 세력을 통합하며 ‘남부여’라고 국호를 바꾸어가며 부여족 계승의식을 강조하려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무왕이 왜 마한계와 손을 잡으려 했는지, 신라가 백제를 다시들 지역 세력을 지칭한 ‘응류(준)’라고 불렀던 까닭도 설명할 수 없다. 성왕 때 편성된 37군 가운데 무려 15군을 전남 지역에 배치한 이유도 설명이 어렵게 된다.

결국 새롭게 제시되고 있는 ‘마한론’은 마한이 5세기에 들어서도 독자적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하여 이병도의 통설을 비판한 것 같으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병도의 틀에 갇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고대사를 마한 중심으로 재인식하기 위해서는 구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의 접근이 중요함을 새삼 말해주고 있다.시민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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