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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의도된 조작, ‘도덕적 해이’ 아닌 명백한 ‘범죄’
입력시간 : 2019. 05.09. 00:00


윤승한 사회부장

같아 보인다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다. 겉은 같지만 속은 상이한 경우가 허다하다. 잘못도 그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다. 모르고 하는 잘못이 있고 알면서도 하는 잘못이 있다. 모르고 하는 잘못은 통상 실수쯤으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모르고 했다고 해서 잘못이 잘못이 아닌 것은 아니다. 비난도 처벌도 당연히 뒤따라 한다. 다만 의도적이지 않은 만큼 참작의 여지는 감안되는 게 일상적이다.

알면서도 하는 잘못도 있다. 참 뻔뻔하고 악질적이다. ‘아니면 말고’식이다. 영세업자들이나 보통 사람들 보단 기업이나 재벌, 고위 공직자, 정치인 등의 잘못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종종 ‘도덕적 해이’란 그럴 듯한 말로 포장되기도 한다. 다분히 의도적이다. 분명한 것은 알고 하는 잘못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되물을 필요도 없는 명백한 ‘범죄 행위’다.

요즘 여수지역이 시끄럽다. 여수산단내 대기오염물질 측정값 조작 사건 때문이다. 입주 기업들이 미세먼지를 유발하는 물질의 측정값을 조작해 배출해오다 환경당국에 딱 걸린 것이다. 충격적인 대목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들과 측정대행업체간 공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의도적인 잘못이 확인된 셈이다. 알면서도 주민들의 생명권을 담보로 돈벌이에 급급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혹시나 했던 대기업들의 부도덕한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여수시민들이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다.

이번에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적발된 측정대행업체는 4곳이었다. 이들 업체들은 지난 2015년부터 최근까지 여수산단 내 사업장 235곳을 담당해오면서 미세먼지 원인물질인 먼지·황산화물·질소산화물 등의 측정값을 조작해 허위로 1만3천96건의 성적서를 발급했다. 허위기재 8천843건, 축소기재 4천253건이었다. 배출 농도를 실제 측정값의 33.6% 수준까지 낮췄다. 이 가운데 1천667건은 염화비닐 등 유해성이 큰 대기오염물질의 배출 허용 기준치를 최대 173배 초과하고도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몄다.

이 과정에서 산단내 6개 대기업들의 공모정황이 포착됐다. ㈜엘지화학 여수화치공장, 한화케미칼㈜ 여수1·2·3공장, 포스코 계열의 ㈜에스엔엔씨, 대한시멘트㈜ 광양태인공장, (유)남해환경, ㈜쌍우아스콘이 그 업체들이다. 업체측 측정 의뢰 담당자들이 대행업체측에 측정값을 조작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카카오톡 대화가 당국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이들의 불법행위가 지난 4년 여간 태연스레 자행되는 동안 인근 지역 주민들은 어떤 보호장치 하나 없이 그대로 대기오염물질들을 들이마셔야 했다. 지금도 그렇다.

주민들과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지자체와 환경당국이 뒤늦게 나서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전남도도 그렇고 여수시도 그렇다. 환경부 장관까지 현장을 찾았다. 전수조사 얘기도 나오고 강력한 처벌규정 필요성도 나왔다. 민관 거버넌스 구축 방안도 거론됐다. 이러는 사이 정작 조작사건의 당사자인 관련 기업들은 무성의한 사과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고작 한다는 게 책임만 있고 권한은 미약한 공장장들의 사과였다. 행정처분도 ‘배출 조작 업체 과태료 200만원, 측정대행업체 6개월 영업정지’가 전부였다. 주민들 입장에선 분통이 터질 수 밖에 없다.

이번 조작 사건 관련 기업들의 지역사회 공헌도는 크다. 굵직굵직한 투자로 일자리를 만들었고 그 일자리로 인해 지역경제가 숨을 쉴 수 있었다. 각종 공헌 활동도 지역사회에 활력이 됐다.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이번 조작사건이 정당화될 순 없다. 모르고 한 잘못이 아닌, 알면서도 한 잘못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칫 ‘우리 때문에 먹고 살면서’라는 오만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이 기업과 지역사회간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결국 상생해야 할 동반자 관계이기에 그렇다. 관련 기업들이 오만하다는 오해를 불식시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진정어린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과와 반성의 진정성은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한 피해보상과 재발방지가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여수 지역사회가 납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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