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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부친상에서 단상
입력시간 : 2019. 05.13. 00:00


허탁 전남대 의대응급의학과 교수

심전도 모니터에서 파형이 지평선처럼 평평하게 흘러갔지만 그냥 바라보았다. 아버님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10일이 지났지만 지금도 실감나지 않는다. 그냥 온 몸에 힘이 없고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아버님은 10년 전 뇌출혈로 수술 받으신 후 보행이 불편하셨다. 2년전 위암수술을 받으신 후에는 보행마저도 불가능해 요양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올해 설 지나고부터 기력이 많이 떨어져 오래 버티시지 못할 거라고 짐작했다. 어쩌면 예견되고 준비된 죽음이었다. 아버님은 평소 술 드시면 늘 부르시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고향의 봄’으로 돌아 가셨다.

장례식장을 찾아오는 조문객들은 대부분 상주의 마음에 공감하는 말을 건넸다. “상사에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슬픔이 크겠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황망하시겠습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분명히 공감해주는 말이라 처음에는 괜찮았으나 점점 더 많은 조문객을 맞으면서 그 슬픔과 아픔이 켜켜이 쌓이는 듯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가끔 “힘내세요.”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 “고인은 훌륭하게 사셨습니다.” “고인의 은덕을 되새기며 명복을 빕니다.” 이렇게 격려하고 긍정적인 말들은 힘이 됐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에서 부친상은 ‘천붕’으로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으로 비유한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숙연하고 무거워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더 무기력하게 만든다. 조문객들이 묻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지병이 있었는가?” “요양병원에 얼마나 계셨는가?” 슬픔과 아픔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며칠간 반복되고 지속된다. 고인을 기리고 유가족을 격려하는 조문인사는 드물다.

작년 12월 조지 H.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 풍경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장남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당신은 멋진 아버지”라며 고인에게 찬사와 유머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전했다. 아들 부시는 고인을 위대한 대통령이자 자랑스러운 아버지로서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남편과 할아버지의 역할 모델로서도 칭송했다. 또한 “그의 골프 쇼트 게임과 춤 실력은 형편 없었다. 이 유전적인 결함은 우리에게 전달됐다”고 말해 추모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오랜 친구인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중환자실에 몰래 들여온 보드카를 마신 일화도 소개했다. 부시 대통령의 목사인 러셀 레빈슨 목사는 “최근 며칠 부시 대통령보다 도움견 설리가 언론에 많이 나오고 인기가 있었다”는 농담을 했다. “슬픔 속이지만 이제는 웃읍시다”라고도 아들 부시는 말했다. 고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유머와 곁들이며 장례식을 마쳤다.

우리네들의 보통 장례식도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며 존경과 사랑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유가족에게도 아픔과 슬픔에서 더 빨리 회복하도록 긍정의 따뜻한 격려를 보냈으면 한다.

이번 부친상을 치르면서 위트 있는 농담이지만 삶의 교훈이 되는 대화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술 한 잔 마시고 “이제 편모슬하구나. 바르게 커야지.”라고 하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나도 편모슬하인데.”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석에 있던 한 친구가 “나는 고아인데.”하며 풀이 죽었다. 필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디 가서 애비없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면 착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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