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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꽃잎처럼 떨어져간 이름들
입력시간 : 2019. 05.15. 00:00


송형택 언론인

올해는 5·18이 일어난 지 39주년이다. 그 해에 태어난 아이가 39살이니 중년이다. 하지만 그 날 세상을 떠난 사람은 항시 그 나이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2010년 광주민중항쟁 30주년에 당시 76세이던 동구 월남동 주남마을에 사는 김막님 씨가 털어놓은 회고담이다. “열일곱에 오빠 아는 사람의 중매로 떠밀리듯 결혼을 했지요. 남편이 군에 가더니, 당신이 엄청 못생겨서 말뚝을 박는다고 핑계를 대며 8년을 더 머물렀지요. 그 잘난 남편 덕분에 홀로 시부모 봉양하며 아이들을 키우느라, 억척 아줌마란 이름표를 달았지요”

“그 해(1980) 5월21일이지요. 공수부대원들이 마을에 들어왔지요. 그날 나는 마을 앞 하천 둑 공사장에서 시멘트를 나르는 일용 근로 작업을 했지요. 갑자기 콩 볶듯 총소리가 나고 ‘지금 난리가 났다. 하던 일 다 치우고 얼른 집으로 가라’ 누군가 소리를 쳤어요” 주남 마을은 광주에서 화순으로 나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피의 초파일(음력 4월 8일)’이라 불리는 1980년 5월 18일부터 광주민중항쟁 기간 내내 계엄군과 시민군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

5월 21일 낮 도청과 광주역 일대에서 계엄군이 발포했고 시민들도 무기를 찾았다. 화순광업소를 비롯해 화순 역전파출소와 동면 지서 등의 무기로 무장을 했다. 그 날 오후 4시30분께 계엄군은 도청에서 물러났고 공수 제11특전여단이 주남마을 뒷산에 진지를 구축했다. “그때 마을에 군인들이 꺼멓게 있었지요. 바위 있는 데서 절 있는데 까지 꺼맸지요. 헬리콥터가 뜨고 앉으면 먼지가 났지요” 그렇게 마을을 장악한 계엄군은 저녁 8시 이후에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총을 쐈다. 주민들은 밤새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설쳤다.

이곳 주남마을은 화순 쪽으로 가는 길목이라 시민군들도 무기와 실탄 보급을 위해 자주 오갔다. 그때마다 길목에 매복한 계엄군이 도로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23일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계엄군이 너릿재를 지나던 봉고차에 기관총과 M16으로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타고 있던 18명 가운데 여고생 1명만 빼고 모두 죽고 말았다. 애초 부상만 당했던 2명도 계엄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리고 주남마을 뒷산에 암매장됐다. 김막님은 마을 당산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마을 앞을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산으로 가요, 신작로로 가면 죽소’라고 말해주었다. 그 덕분에 살아난 사람들도 많아서 지금도 그 당산나무는 생명나무라고 불린다고 한다. 또 5월 24일 12시 30분경이다. 역시 공수 제11특전여단 일부 병력이 효천 쪽으로 이동하며 진월동의 원제와 진제마을 앞 저수지 진월제를 지나갔다. 그때 공수대원 중 누군가가 마을 어린이 15명과 함께 저수지에서 목욕을 하던 당시 전남중 1학년 방광범에게 조준 사격을 가했다. 방군은 마치 총에 맞은 오리처럼 즉사하였다. 잠시 뒤 13시경이다, 역시 공수대원들이 진월제 아래 진제마을 앞 쪽으로 이동하면서다. 효덕초등학교 4학년 전재수가 공수대원들을 보고 손을 흔들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무차별 사격이었다. 전군은 총에 맞아 즉사하였다. 벗겨져버린 고무신 한 짝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진월제 옆길에서 진월마을은 충분히 상대방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였다. 더욱 초등학생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이성을 잃었을까? 그 광기와 분노는 무엇일까? 왜 아이들에게까지 총을 쐈을까? 당시 효덕국민학교 교사였던 한 선생님의 말이다.

“계엄군이 다시 광주에 들어오고 십여일 문을 닫았던 학교에도 아이들이 왔지요. 하지만 전재수의 자리는 텅 비어있었지요. 아이들과 함께 재수의 빈 책상 위에 장미꽃을 놓아주었지요.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재수의 책상 위에 놓아주었던 장미꽃이 피로 변해 책상을 흥건히 적시는 거예요. 지금도 그 기억이 나면 가슴은 터질 듯 벌렁거리고 숨이 막히지요” 무심한 게 세월이라 이제 그날은 39년 전의 일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비참하고 참혹한 기억 속의 방광범, 전재수는 어린 소년으로 우리에게 살아있다. 그 어린 소년들의 이름과 망월동 구묘역에서 민주화를 염원하며 잠들어 있는 해직교사 엄익돈, 명지대생 강경대, 전남대생 박승희, 보성고생 김철수, 광주 교대생 이경동과 한상용, 민중시인 김남주…. 꽃잎처럼 떨어져간 그날의 이름들까지 그리움으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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