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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5월 광주, 그날의 흔적을 지켜내는 일
입력시간 : 2019. 05.17. 00:00


서대석 광주시 서구청장

지난 3월 영화 ‘항거:유관순이야기’를 관람했다.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만세를 부르다 잡혀온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겁박하는 일본인 판사에게 의자를 집어 던지며 일갈(一喝)하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은 세월에 깎여 안일해진 나를 돌아보게 했다. 어린 그녀에게 참혹한 고문이 가해지는 장면에선 차마 눈을 뜰수 없었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 해서 그 날의 아픔이 치유되지는 않을 터. 이 또한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역사다.

영화를 보는 내내 ‘5월 광주’가 오버랩됐다.정치 군인들의 야만적 폭력에 스러져간 꽃다운 청춘들이 떠올랐다.아직도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5월의 광주. 광주 민주화항쟁도 내년이면 40주년을 맞는다. 5월의 광주는 오랜 세월 군부 독재정권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조작으로 폭도들의 소요사태로 왜곡되어 왔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의식 있는 이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그 날의 진실들은 대부분 규명이 되었다. 이제 대다수 국민들도 5·18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큰 획이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부 불순한 세력들은 치졸하고 미혹(迷惑)한 망언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일일이 대꾸하고 분노할 가치도 없는 한심한 생떼지만, 그래도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한다. 그게 바로 5월 정신 아니겠는가.

금년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광주학생 항일독립운동도 90주년을 맞았다.내년에는 4·19혁명 60주년과 함께 광주 민주화항쟁 40주년이 된다. 그런 점에서 올해와 내년은 무척이나 의미 있는 해가 될 것이다. 해방 직후 왜곡되고 굴절되어 온 우리의 근현대사를 바로 잡을 적기인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5월 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오월의 정신과 의미를 바로 알리기 위한 순례길을 조성해 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우리 서구지역에는 많은 5·18 사적지들이 들어서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항쟁 당시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가두고 서슬 퍼런 계엄사령부의 조사와 취조가 이루어졌던 상무대 영창과 군사법정을 복원해 놓은 ‘5·18 자유공원’,윤상원 열사를 비롯한 청년 강학들의 숨결이 살아 있는 ‘광천동 성당의 들불야학 옛터’와 ‘시민아파트’,상인들이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쥐어주며 힘을 보태던 ‘양동시장’, 계엄군의 감시 속에서도 고문 등으로 다친 시민들을 치료해 준 ‘화정동 국군통합병원’.

어디 이 뿐인가. 민주 인사와 학생운동 지도부, 시민군을 체포해 지하에 감금하고 고문을 자행했던 ‘505보안부대’,청장년과 아주머니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무장한 계엄군에 맞서 돌맹이 하나로 죽음의 행진을 펼치던 ‘농성광장 격전지’까지. 그 길을 걸으며 그 날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이는 곧 5월 그날의 시간과 공간의 흔적들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 보스턴에는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 즉, 자유의 길이 있다. 프리덤 트레일은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학살과 보스턴 차(tea) 사건과 같은 근현대사의 발자취를 따라 연결한 4km 구간의 역사탐방로다. 지금은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보스턴의 대표 관광코스가 됐다.

우리 서구에도 광천동 성당에서 상무대 옛터 5·18 자유공원을 지나 505보안부대, 국군광주병원을 거쳐 농성광장과 양동시장으로 이어지는 13.5km의 역사 탐방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각 사적지에는 현황과 사진자료를 넣은 안내판을 설치하고 양동시장에서 쌍촌역 사거리까지 도로변에는 5월 정신을 상징하는 이팝나무를 심어도 좋을 듯 싶다. 버스투어와 자전거를 이용하여 순례길을 탐방하고, 일부 구간은 걸어서도 탐방할 수 있도록 하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양동시장에는 주먹밥 만들기 같은 체험 위주의 콘텐츠로 채워볼 생각이다.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불의에 저항한 누군가의 희생의 역사임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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