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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5·18 정신계승 전국 그림그리기·글쓰기 대회 수상자
입력시간 : 2019. 05.21. 00:00


국가보훈처장상-대상

할머니와 주먹밥-백재열



차창 너머로 초록색 물결이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그 물결은 풍경 가장자리로 흘러가 산이 되었다. 5·18민주화묘지로 가는 길은 5월의 다채로운 색으로 엉클어진 것들이 가득했다. 나무들은 걸치고 있던 바람을 털고 꽃들은 연등처럼 은은하고 정갈한 빛깔을 간직한채 정좌하고 있었다. 멀리 추모탑이 햇볕아래 창백했다. 그 너머로 묘비와 무덤들이 눈에 들어왓다. 기념행사라도 열리고 있는지 추모탑 아래는 어린이들이나 학생들, 학부모들이 가득했다. 나는 멀리서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들어 있는 무덤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저 왔습니다.” 할머니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아니다. 할머니가 없다. 햇볕이 사라지고 그늘이 드리우자 목이 먹먹해지고 있었다. 내 그림자는 길어진지 오래였다.



내 기억속의 할머니는 언제나 허리를 절고 있었다. 할머니는 불편한 허리 때문에 엉거주춤하게 걸었고 당장이나 지팡이 없이는 일어나지도 못했다. 내가 듣기론 5·18민주화항쟁 당시, 계엄군의 몽둥이에 허리를 맞았다고 하고, 한편으로는 계엄군을 피해 도망치다가 담장을 넘었는데 잘못 떨어지는 바람에 그러했다고도 들었다. 어떤 것이 사실이건간에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할머니가 잃어버린 것은 건강한 허리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젊은 부부였던 내 부모님은 금남로에서 죽었다. 도청 앞 애국가가 흘러나오다 국군은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그때 흘러나오던 애국가는 이 땅의 민주주의에 고하는 진혼곡이었다.

행렬의 최전방에서 가장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던 시민들이 순식간에 민주주의와 동행하는 길동무들이 되었다. 대인시장에 장보러 나왔다가 우연히 구경을 나왔던 내 부모도 아수라장이 된 금남로에서 달아나다가 죽었다. 총에 먼저 맞은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허벅지 뒤쪽에 총상을 입었다. 아내를 버리고 갈 수 없었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다가 총격에 즉사했고 어머니도 그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목격담만으로 내 부모의 최후를 접했다. 시신을 수습하고자 했던 할아버지는 전대병원의 시체안치소에서 발견되었다.

늘 온순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했다는 할머니는 완전히 변했다. 할머니는 나를 대학생인 막내고모에게 맡겨두고 거리로 나섰다. 할머니는 총을 들고 계엄군과 맞서다가 장렬하게 죽기를 원했다. 그러나 나이들고 깡마른 할머니에게 총을 주려는 사람은 없었다. 할머니는 다른 아주머니들과 주먹밥을 만들어서 시민군에게 나누어 줬다. 많은 시민들이 십시일반식으로 쌀을 조금씩 나누었고, 그 쌀로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주먹밥을 만들었다. 밥알과 채소를 뭉쳐서 만든 주먹밥처럼, 고립된 광주에서 시민들은 한데 뭉쳐서 단결했고 나라와 광주의 미래를 걱정했으며 진실을 외부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할머니의 내면은 뜨거운 주먹밥처럼 언제나 데워져 있었다. 할머니는 시민군을 독려했고 가족을 잃은 유가족을 만나면 껴안고 함께 엉엉 울었다. 그 울음에는 한의 고장인 전라남도의 비애와, 그 한에 맞서겠다는 살아남은 이 특유의 생명력과 투지가 담겨 있었다. 유가족들이 우는 것을 보며 시민들도 저마다 총을 내려놓고 훌쩍훌쩍 울었다. 할머니는 그 광경을 마음 깊은 곳에 아로새겨 놓았다. 시간이 흘러, 도청이 함락되고 시민군이 제압되었지만 할머니의 5·18민주화운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할머니와 나는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의 달동네에서 살았다.

할머니는 종교에 의지하기 시작했고, 허리가 불편한 와중에도 월산동 신우아파트 앞 상가에 분식집을 차려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영업했다. 가끔씩 5·18민주화항쟁 때 할머니를 기억하고 있는 아저씨들이 찾아와서 떡라면과 김밥을 주문하고선 돈이 들어있는 듯한 봉투를 건네곤 했다. 받네 안받네 하고 실랑이를 하는 할머니와 아저씨의 모습은 촌극처럼 우스꽝스러워보였지만, 실은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싸웠던 전우들의 연대의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허리는 불편했으나 할머니는 5·18기념재단이 초청한 행사는 꼬박꼬박 참석했다. 전남대,조선대 학생들이 무작정 취재를 하러 찾아오면 떡과 차를 내주며 적극적으로 답했다. 할머니의 열정에는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사람의 한이나 상실감이 깃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족들을 떠나보낸 이의 절망감, 그런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추모의 소산이었다. 특히, 할머니는 매년 금남로에서 열리는 5·18기념행사때 거리로 나가서 주먹밥을 나눠주는 행사에 참석했다.

“왜 하필 주먹밥이에요?” 철없이 묻는 내말에 할머니의 눈이 커졌다.

“응?”, “왜 하필 주먹밥이에요? 컵밥도 있고 스프도 있고 빵도 있는데..”

할머니가 배시시 웃었다.

“그 상황에서 한 사람을 그래도 넉넉히 먹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어, 그리고 주먹밥에는 5·18정신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고들 하지”

“5·18정신이요?”

“너가 더 크면 알게 될 거여”

훗날 군대에서 훈련 때 주먹밥을 나눠먹으며 할머니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어렵고 급박한 상황에서 주먹밥이 여러 사람을 넉넉하게 먹이는 방법이라는 것은 공감했지만, 그때까지도 5·18정신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평생동안 한이 많았던 할머니, 내 할머니는 2016년 4월에 눈을 감았다. 돌아가시며 “트로트가 끝났구나”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너는 잘 살아라”

창밖에서 진달래꽃내음이 풍겨와 포르말린 냄새를 밀어냈을 때, 나는 할머니의 생애를 생각했다. 주먹밥을 만들던 할머니, 어쩌면 주먹밥을 만드는 순간에 유일하게 평화를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할머니, 할머니, 이젠 편히 쉬세요” 말하면서 목이 먹먹했다. 눈앞이 뿌예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얼굴이 흐려져 영원속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추모탑 아래에 와보니 글쓰기, 그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점심이 되자 주최측에서 주먹밥을 나눠주었다. 나는 그 주먹밥을 세 덤이 받아들고 묘역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묻혀있는 무덤에 주먹밥 두 덩이를 올려놓았다. 절을 두 번 올린뒤, 준비해온 소주를 무덤 이곳저곳에 뿌렸다. 그새 주먹밥에 개미가 가득했다. 개미들이 주먹밥에 한데 엉겨붙어 있었다.

문득, 나는 5·18민주화항쟁 때 고립된 광주 시민들이 주먹밥을 나눠먹었다는 이야기와, 5·18기념행사때마다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주던 할머니를 떠올렸다. 당신께서 말씀하셨던 5·18정신에 대해서도 문득 5·18정신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뭉쳐서 단결하고 희생했던 광주시민들의 정신을, 높고 단단한 벽에 부딪혀 깨지는 일에 가까웠지만, 무엇보다 고귀하고 아름다운 그 정신을 뭉쳐서 단결했던 광주시민들의 5·18정신이 뭉쳐진 주먹밥과 겹쳐졌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 무덤의 묘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얘야, 너 왜 왔니”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주 높은 곳,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광주시장상-금상(일반부)

유재홍씨 잘 계신가?-서종욱



친구가 간지도 벌써 5년이 흘렀네.

가기전 병원에 있을 때 같이 식사 한번하자고 연락왔는데 별로 바쁘지도 않은 일로 미룬 것이 다시 볼수 없을줄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안장한 뒤 누님 전화를 받고 알았네.



전화통화를 보니까 나하고 통화한 기록밖에 없어 연락했다는 말을 듣고 무심했던 나를 원망하며 돌아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네



친구를 알게 된게 10여년전 대기소에서 일하며 서로 마음이 맞아 술도 한잔하며 세상살이 애기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 당신의 고통을 알게 되었지



5·18민주항쟁으로 인해 현장에서 체포, 구금되어 고문과 구타로 인한 후유증으로 행복했던 가정이 파괴되고 세상과 담 쌓고 혼자 고통과 시름에 몸부림치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 저곳 떠돌며 하루살이로 연명하며 버린 몸 더 악화되어 결국에는 폐암이 오고 말았지



아파도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심한 기침으로, 이 여인숙, 저 여인숙 옮겨다니다 임종전에야 병원에 누워 생을 마감했지. 우리의 꽃피던 젊은 시절 세상을 향해 뛰어 나갈 때 5·18민주화항쟁을 만나 아무런 꿈도 희망도 펼쳐 보지 못하고 커다란 암벽에 눌러 주저 않고 말았지.



그때가 벌써 39년이 되었으니 생을 마감한지 5년, 34년간은 고통과 절망속에서 살아 간 친구를 생각하면 뭐라 말 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나를 울리네



친구가 피 흘려 싸운 5·18민주화항쟁이 일주일 있으면 39주년 기념일이네.

나는 무등일보 주최 5·18그림/글쓰기 대회에서 이 글을 쓰고있네.

편지 한번 써보지 않은 내가 이 글을 쓰는건 친구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미안함을 글로 나마 남기고 싶어 도전했네

나도 살아갈 날 보다 친구 찾아 갈 날이 가까워 지는 나이에 접어드니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가네

같이 만나 술 한잔 할 수 없지만, 그곳에서는 좋은 친구들, 옛 동지들과 즐겁게 술 한잔 하시게나



나는 친구 묘 앞에 술 한잔 올리며 이 글을 쓰네



친구여 5·18정신은 국민들 가슴에 아로새겨지고 있네

극락왕생하시게. 다음생에 만나 즐거이 술 한잔 하세



내 친구 유재홍 안녕.





전남도지사상-금상(일반부)

5월에 진 별들은 붉다-곽성숙



옛 망월 묘역 가는길,

죽은 영혼을 달랜다는 이팝나무 흐드러졌다

이팝나무 아래서

달무리 진 망월을 올려보다 생각한다



황소리, 쌍둥이자리, 사자자리, 천칭자리..

5월에 진 별들이 망월과 함께 어둠을 밝히며 내려온다

내 심장도 붉은 빛 되어 타오를 때,

망월 슈퍼 주인은 문을 닫고 사라진다



옛 망월 묘역 쪽에서 한 사내가 큰 소리로 주인을 부른다

아무런 답없자 윗통을 들썩거리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퉁을 부린다

‘이런, 에헤잇’



이팝나무 길따라 가던 사내 등 뒤로 들려오는 소리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5월 별자리 아래에서

달도, 바람도, 사람도 모두 붉은 빛이다



그곳은 아직도, 울음을 참고있는

5월에 진 별들이 붉은 가슴으로 모여 산다.





글쓰기 수상자

일반부

◇대상(국가보훈처장상) ▲백재열(중앙대4)

◇금상(광주시장상) ▲서종욱

◇금상(전남도시자상)▲곽성숙

◇은상(광주보훈청장상) ▲박인자

◇동상(광주시의회의장상) ▲임수현

◇특별상(무등일보 대표이사상) ▲정다정 ▲김해옥

◇장려상(5·18기념재단 이사장상) ▲장헌권

◇장려상((사)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상) ▲오덕렬



학생부

◇금상(광주시교육감상) ▲고혜민(화순고3)

◇금상(전남도교육감상) ▲이창현(양지초4)

◇은상(광주보훈처장상) ▲김재동(광주인성고3)

◇동상((사)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상) ▲강예은(한빛고1) ▲김민채(치평초6) ▲서단아(고실초5)

◇특별상(무등일보 대표이사상) ▲박소정(송원초3) ▲김푸른(숭일중3)

◇입선(무등일보 대표이사상) ▲이진형(문흥중 3) ▲김시우(고실초 6) ▲임성민(수피아여중 2) ▲전대진(목포덕인고 2) ▲이서현(광주중 2) ▲윤지한(문흥중 3) ▲최민희(일신초 6) ▲이시우(송원초 4) ▲김하율(송원초 2) ▲황성훈(문산초 6) ▲윤태연(운암초 6) ▲김소율(하백초 4) ▲박예지(운암초 6) ▲고다혜(고실초 5) ▲신채원(운암초 6) ▲조수인(빛가람중 3) ▲이경아(광주예고 2) ▲문효정(화순고 3) ▲양승혁(진제초 5) ▲권예지(용봉중 2)



심사평-백은하 소설가


기억하는 5·18, 솔직한 이야기의 울림

5·18민주화운동이 39주기를 맞았다. ‘발포’가 아닌 ‘사살’ 이었다는 증언, 헬기 사격 등 은폐되어 있던 진실들이 39년 만에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의해 자행된 국가 폭력은 39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의 삶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제3회 5·18 정신계승 글쓰기 대회’ 심사 원고를 읽으면서 그동안 5·18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도 5·18에 관해 쏟아내지 못한 말들이 억압돼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 글쓰기 대회는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자유스런 형식으로 주최되어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스럽고 진솔한 글들이 많았다. 일반부와 학생부로 나누어서 심사를 했다. 일반부 글에는 증언에 가까운 개인적인 체험을 쓴 글들이 많아서 놀라웠다. 사료로 남겨두어도 좋을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대상인 국가보훈처장상을 수상한 백재열씨의 산문 ‘할머니와 주먹밥’은 “할머니와 나는 광주광역시 남구 월산동의 달동네에서 살았다.”로 시작한다. 5·18때 남편, 아들, 며느리를 잃고 남은 생을 살아온 자신의 할머니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다시 말하면 백재열씨는 5·18 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살아온 자신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분식집을 하면서 생계를 꾸리셨고, 5·18관련 행사를 꼬박꼬박 다니면서 살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2016년에 돌아가시면서 “트로트가 끝났구나.”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고통에 관한 언급 없이 담담하게 써 내려간 할머니의 삶이 더 깊은 울림을 주었다.

금상인 광주시장상을 수상한 서종욱씨의 산문은 제목 없이 “유재홍씨 잘 계신가?”로 시작한다. 10년 전 인력대기소에서 만나 함께 날일을 다니던 친구 사이인 유재홍씨는 5·18때 체포 구금되어 풀려난 후 먼지처럼 텅 비어버린 삶을 살았다고 한다. 유재홍씨가 세상을 뜬 후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 미안함을 글로 쓰고 있다고 말한다. “극락왕생 하시게. 다음 생에 만나 술 한잔 하세. 내 친구 유재홍 안녕.”으로 글을 끝냈다. 서종욱씨는 편지 한 번 써 본 적 없다고 쓰고 있지만, 문체에 리듬감이 있고 진정성이 묻어나왔다. 심사평을 쓰고 있는 필자도 유재홍씨의 극락왕생을 빌어드린다.

학생부 금상인 광주시교육감상을 수상한 고혜민(화순고) 학생의 산문은 5·18의 기억으로 불행해져버린 거리에서 만난 노인에 관해 쓰고 있다. “개인의 삶이 불행한데 정의가 과연 소용이 있을까? 정의를 위해 몸 바친 사람들을 하나 둘 지워가는 이 사회는 과연 정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하고 있다. 그 질문이 선명해서 학생부 금상으로 택했다.

전남도교육감상을 수상한 산문은 이창현 (양지초) 학생의 ‘11살 이창현과 8살 이창현’이다. 두 명의 이창현을 등장시킨 이 산문은 놀라운 소설적 구성을 갖고 있었다. 글 속에서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이창현 학생은 소설적 구성 능력을 타고 난 것 같았다. 글쓰기에 정진해서 좋은 작가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이번 글쓰기대회는 고혜민 학생이 질문한 “개인들의 상처를 하나 둘 지워버리는 세상”에 대한 답변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고, 아직도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드러내는 열쇠가 된다. 은폐되고 숨겨두어서 고통스러운 말들을 풀어내서 더 가볍고 자유로운 해방광주가 되기를 바란다.


김옥경        김옥경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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