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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새로 쓰는 전라도 마한사 <3> 영산지중해 마한 문화의 상징 ‘玉’<上>
입력 : 2019년 05월 21일(화) 00:00


모든 고분서 구슬 대량 확인…보물로 유독 귀하게 여겼다
다양한 형태의 옥(정촌 고분)
최근 나주에서 마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로 구성된 ‘마한역사문화포럼’이 주최하고 나주 공공도서관이 주관한 세미나에 초청되어 ‘마한사 연구현황과 새로운 접근’이라는 주제의 특강을 하였다. 도서관장·나주문화원장을 비롯하여 많은 포럼 회원들이 봄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강의에 집중하고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다. 한국고대사의 원류가 영산강 유역 마한사이고, 그 중심지에 해당하는 나주·영암 지역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필자의 주장에 공감을 하였다. 백제 중심의 마한사 주장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의 활동은 마한중심의 한국고대사를 찾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되리라 확신한다.

과거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역사학에서 문헌은 중요하나 기록이 전혀 없는 선사시대나 설사 역사시대라 하더라도 남아 있는 기록이 충분하지 않는 경우에는 유적·유물은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물론 유적·유물을 찾고 발굴하는 것은 고고학의 영역이지만, 그것이 발산하는 흔적에서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은 역사학자의 몫이라 하겠다.

고분 발굴이 고고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고분 양식을 통해 시대 특성을 읽을 수 있고, 부장 유물은 피장자의 신분이나 당시의 생활상에 대한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고분 구조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분이 발산하는 다른 특징들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더더욱 중요하다. 가령 복암리 고분에서 출토된 완전한 형태의 소뼈를 가지고 당시 순장 풍속을 알 수 있는 사례로 해석하거나, 나주 정촌 고분의 금동신발 뒤꿈치에서 묻어져 나온 파리 유충을 통해 복장(複葬) 풍습을 짐작하는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추론을 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미 발굴이 마무리된 보고서라고 하더라도 새롭게 해석할 여지는 없는 것인지 꼼꼼히 다시 읽어내는 작업도 필요하다. 앞으로는 이러한 측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출토 토기의 특징을 분석하여 당시 사회의 모습을 찾으려 하였다. 대표적인 생활용품인 토기는 가장 많이 출토되는 부장품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출토 유물은 토기뿐만 아니라 구슬(玉)·마구·무기류·생활도구 등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심지어 구슬(玉)은 고분에 따라 토기보다 훨씬 많이 출토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토기에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玉과 같은 다른 유물들은 소홀히 취급하였다.



마한 관련 발굴 보고서를 검토하다 보면 ‘玉(구슬)’이 대부분 고분 또는 일반 주거지 유적에서 적지 않게 출토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영암 시종 옥야리·신연리·내동리 등 영산강 유역의 모든 고분에서 玉이 대량 확인되고 있다. 최근 금동신발이 출토되어 많은 사람들을 깜작 놀라게 한 복암리 정촌고분의 한 석실에서는 무려 1천117점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구슬이 출토되었다. 마한의 핵심지인 영산지중해를 중심으로 구슬이 대거 발굴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성강 중류 지역에 위치한 보성 석평 유적에서도 구슬과 다량의 수정이 출토되었는데 수정을 가공한 공장유구까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마한 지역에 광범위하게 ‘옥’이 분포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곧 ‘玉’이 마한 지역 문화 형성에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의 기록은 이러한 궁금함에 명쾌한 해답을 던져 주고 있다.

즉, 삼국지 위지 동이전 韓傳에 있는 “(그 나라 사람들은) 구슬을 재보(財寶)로 삼아 옷에 매달아 장식을 하거나 목이나 귀에 매달지만, 금·은과 비단·자수는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以纓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懸頸垂耳 不以金銀繡爲珍)”라는 기사가 그것이다. 이 기사는 ‘韓’ 지역 사람들은 구슬을 보물로 여겨 옷에 매달아 장식을 하거나 목걸이, 귀걸이로 이용하고, 金銀 비단·자수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유명한 사료이다. 여기서 말한 ‘韓’을 대체로 ‘삼한’으로 해석하여 삼한 사회를 설명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같은 내용이 ‘진서’ 열전에는 ‘마한’조에 나와 있는 것으로 보아 삼한 중에서도 ‘마한’ 지역의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살피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말하자면 영산강 유역은 물론 보성강 유역에서 많은 ‘옥’의 출토는 이러한 마한인들이 玉을 유독 귀하게 여겼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마한인들이 玉을 옷에 부착하거나 목걸이·귀걸이 하는 데 즐겨 했다는 것은 당시 복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게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장식의 의미를 넘어 계급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이용되어 당시 사회의 정치·경제적 문화 양상을 반영해주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玉은 우리나라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확인된다. 옥은 구슬, 관옥(管玉 대롱옥), 곡옥(曲玉), 다면옥 등 여러 형태로 분류되고 있다. 구슬은 유리제로 된 환옥형과 관옥형이 있고, 색상은 크게 초록색과 파랑색 계열로 구분된다. 관옥과 곡옥은 대부분 조합 관계를 보이며 확인되고 있다.

마한 사회에서 금·은보다 더욱 진귀한 보물로 여겨졌던 구슬이 영산지중해를 중심으로 대량 발견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옥이 진귀한 보물이라면 그것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착용하거나 패용한 사람은 그곳 정치체의 수장이거나 그와 버금가는 존재임에 분명하다. 정촌고분 1호 석실에서만 무려 1117점이나 출토되었다는 것은 그 고분의 주인공이 적어도 그 지역의 연맹체의 장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하게 한다. 금동신발과 함께 고분의 주인공의 지위를 살피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전남 지역에서 대량 출토되고 있는 玉들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를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대표적인 ‘옥’에 속하는 ‘곡옥’이 일본에서 유입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논리를 발전시켜 한반도 남부 마한 지역에서 곡옥과 같은 옥이 많이 출토되는 것은 이 지역이 과거 임나일본부 관할 지역임을 입증해주는 것이라는 일본 학자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국내 학자들은 ‘곡옥’을 마한과 왜의 문화 교류 측면에서 이해하려 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반월형, 魚形 곡옥이 일본 열도에 영향을 주고, 그 영향을 받아 성립된 왜의 두첨형(頭尖形), 원두어형(圓頭魚形) 곡옥이 다시 한반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옥’인 ‘관옥(管玉 대롱옥)’도 마한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는 것과 연결지어 보면 마한이 玉 생산·전파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시민전문기자 (문학박사·초당대 교양교직학부 초빙교수)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