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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전두환과 황교안과 미디어
입력 : 2019년 05월 21일(화) 00:00


“광주시민에게 너무나 미안하고….”

19초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너무나 부끄러웠고,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사 도중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대통령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울림이 컸다. 지난 37주기 기념사 때도 온 광주가 울었다. 대통령의 공감에 광주시민들은 맺힌 한이 다 풀린 듯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감동의 여운은 채 몇 발자국 떼지 못했다. 해묵은 상처를 파 헤집는 자들로 광주는 울화와 복통병으로 몸져 누울 지경이다. 지하 영령들이라고 평안할까.

기일을 앞두고 광주에는 전날부터 비가 쏟아졌다.

“세상에나 하늘도 알고 39주기 행사하라고 비가 딱 멈췄구만. 그래 다 같은 마음이여”

“황교안이 나왔어? 황교안이 먼 낯짝을 허고 온가 볼라고. 지가 인간이면, 광주에 못오제”

일군의 시민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던진다.

자국 군대의 총칼에, 몽둥이에, 자식을, 부모형제를 무참하게 빼앗긴 이들이다. 속수무책으로 현장을 지켜본 이들도, 전해들은 이들도 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그 처참한 불행에 패륜적 망언을 일삼는 자당 국회의원 징계를 뭉개고 광주를 찾다니. “저게 사람이냐”는 시민들의 한탄은 괜한 말이 아니다.

그런 황교안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는 수천수만번의 다짐에도 막상 얼굴을 마주하자 한 맺힌 절규, 피를 토하는 고통의 외마디가 쏟아졌다. 헌화도 용납할 수 없다.그는 도망치듯 잔디를 짓뭉개며 국립묘지를 떠났다.

제 1야당 대표의 모르쇠에 힘을 받았을까. 참담함은 이어졌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발점인 전남대 정문과 시내에서 극우단체들이 5·18을 폄훼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범죄현장에서 버젓이 혐오범죄를 자행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서른 아홉 번째 제삿날에.

이 나라에서 이들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단다. 범죄를 동조하는 자들이 행패를 부려도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고모 왜 이렇게 경찰이 많이 나와 있어? 촛불 집회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국립아시아전당을 중심으로 금남로 일대와 주변은 전국에서 몰려든 참배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내와 주변으로 수많은 경찰차와 의경들이 인간띠를 이뤘다. 행여 일어날지 모를 극우단체와의 충돌을 우려한 것이었다.

광주시민들은 성숙했다. 어떠한 충돌도 없었다. 반인륜적 인간들의 범죄적 행태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허나 시민들의 성숙함과 대통령의 절절한 호소는 온데간데 없는 듯하다.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은 반쪽짜리 행사라고 어거지를 쓰고, 대표와 악수를 했느니 안했느니 생떼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라던가. 언론들은 이 황당무계한 어거지를 경마식으로 보도한다. 어쩌자는 건가.

‘복통병’이 난다. 세계에 유례없는, 한국에만 있는 병이 ‘화병’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힐 듯하고, 뜨거운 뭉치가 뱃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는 증세와 불안·절망·우울·분노가 함께 일어난다. 그 세월을 40년 가까이 살아온 이들이다.

어디가서 이 한스러운 마음을 달래나. 화사한 햇살이, 이팝나무의 무성함이 가슴을 아린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