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youtube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탑뉴스
정치
지방자치
경제
지방경제
사회
국제
문화
전남뉴스
구청뉴스
오피니언
사람과생활
인문지행의 세상읽기- 투르게네프 ‘사냥꾼의 수기’
더없이 잔잔한 글의 힘 농노를 해방하다
입력시간 : 2019. 06.07. 00:00


투르게네프의 초상화
좋은 기술 덕분에 사는 것이 전에 없이 편해졌다. 긴 시간과 강도 높은 노동이 필요했던 일들을 기술 문명 덕분에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 때문에 빼앗기던 시간도 많이 줄었고 생활도 여유로워 졌지만 무슨 일인지 모두가 더 바쁘다. 너무나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은 없다.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0세 이상 국민 중 하루 10분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은 10명 중에 1명도 안 되며, 3명 중 1명은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외국의 한 평론가는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 때가 되면 한국 사람들은 한국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지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정작 그 작가의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책을 읽지 않고는 더 좋은 삶을 살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생활이 편해져서, 오히려 삶의 의미를 돌아볼 수 없을 만큼 더 바빠진다면 더 나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가가 러시아의 이반 투르게네프다.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의 3대 소설가로 꼽힌다. 투르게네프를 러시아 사회 모순을 파헤친 작가라고 말하지만 뜻밖에도 이 작가가 묘사하는 러시아의 삶은 전혀 비참하지 않다. 그 반대다. 놀랍도록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투르게네프의 어머니, 바르바라는 오률 지방에서 농노를 무려 5천명이나 거느린 대지주인 귀족 가문 출신인 반면에 아버지 투르게네프는 귀족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몰락한 형편이었다. 기병 장교였던 아버지는 자유분방한 생활과 도박 때문에 빚을 많이 지자 부유한 집안의 딸과 결혼하는 쪽을 택했다. 이렇게 해서 투르게네프는 도박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의 아버지와 대지주 집안의 딸인 여섯 살 연상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투르게네프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어머니의 엄청난 재력 덕분에 일찍부터 외국인 가정교사들에게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을 배우고 베를린 유학을 하면서 최고의 귀족 교육을 받았다.

분명 어머니의 덕을 많이 봤지만 모자간의 사이는 좋기는커녕 사실 매우 나빴다. 작가의 어머니는 아주 거칠고 폭력적이어서 농노들을 자주 매질했을 뿐만이 아니고, 아들에게도 거칠고 위압적이었다. 특히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농노들에 대한 어머니의 가혹한 학대는 크나큰 고통이어서 평생을 괴롭히는 상처가 되었고 농노에 대한 마음의 빚으로 남았다.

볼가 강의 배끄는 인부들(일리야 레핀)


투르게네프는 어렸을 때 목격한 농노들에 관한 이야기를 반드시 쓰리라고 맹세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 작품이 ‘사냥꾼의 수기’다. 그는 1847년에 쓴 첫 작품을 시작으로 연작으로 발표했다가 후에 ‘사냥꾼의 수기’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 작품은 투르게네프에게 작가로서의 명성도 안겨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당시 러시아의 농노 제도의 모순과 부도덕성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귀족들의 안락함을 위해서 자신은 물론 자식까지 노예 신분을 대물림하면서 사는 농노가 당시의 러시아 인구의 50퍼센트에 이르던 때였다.

이런 농노제도에 대해서 투르게네프는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장소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그래서 어떻게든 싸워야 할 ‘적’이라고 말했다.

농노 해방 포고령을 듣는 사람들


하지만 그가 농노 문제를 세상에 보여주는 방법은 아주 특별했다. 그는 ‘사냥꾼의 수기’를 통해서 스스로 적이라고까지 표현한 농도 제도를 향한 분노와 증오 대신에 농노라는 굴레에 속박된 사람들이 그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시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농노는 무지몽매하고 미개해서 부려먹는 것 외에는 쓸 데가 없는 가축이거나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농노가 감히 문학작품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투르게네프에게 농노는 아무 설명이 필요 없는 그냥 ‘사람’이었다. 이렇게 되자 투르게네프는 구금과 유배까지 요즘 말로 ‘블랙리스트’ 작가가 되었고, ‘사냥꾼의 수기’의 출판을 허가한 검열관은 자리에서 쫓겨났다.

투르게네프의 산문지 원고


그러면 ‘사냥꾼의 수기’는 어떤 작품인가? 우선 작품 어디에서도 과격한 정치적 표현을 찾아볼 수가 없다. 농노들을 위한답시고 선동 또는 고발로써 농노의 삶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을 보이지도 않는다. 투르게네프가 만난 농노들은 더도 덜도 아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감정과 생각, 삶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반성하고, 더 나은 삶을 고민하는 여느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지주나 귀족들보다 더 열등하지도 않고 고단한 운명 때문에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지도 않는다. 철마다 한가하게 사냥을 나와서 온 농촌마을을 뒤집어 놓고 자연을 유흥의 대상으로 삼는 지주 귀족들과 달리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성과 품위를 지키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농노라는 것을 더없이 잔잔한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새 농노의 이야기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정직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다가 문득 농노야말로 가장 무고하고 순수한 ‘사람’이라는 깨달음 앞에 선다.

이런 ‘사냥꾼의 수기’를 당시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읽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농노를 해방해야겠다’는 일념을 잊은 적이 없던 황제는 마침내 농노해방을 결정한다. 그리고 1861년 2월19일에 러시아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인 농노해방령이 내려졌다.

투르게네프가 농노제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작품으로만 썼다면 그가 쓴 글의 힘은 반쪽짜리에 그쳤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1850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돌아와서 물려받은 농노를 해방시키고 인두세 제도를 개혁했다. 이 일은 러시아 농노가 해방이 되기 10년 전이었다.

투르게네프는 사회적 모순과 정치적 억압에 대해서 직접적인 고발보다는 인간과 자유에 대한 신념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로써 말하고자 한 작가다. 그 탓에 지나치게 서구화되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글들이 품은 힘은 부드럽지만 더없이 강한 것이어서 갈수록 거칠고 조야해지는 세상을 돌아보고, 사람다움을 위한 성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이런 뜻에서 글과 책의 힘은 더 나은 삶을 위한 변화에 필요하기에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는다.

심옥숙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로 박사를 마쳤다. 이 논문은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대학강의와 함께 통합적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는 시민의식 실현을 꿈꾸며 다양한 형식의 시민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동명동에 자리한 동네책방 '심가네박씨'를 운영 중이다. 저서로는 'Der Tanz bei H.Heine' '괴테의 생각을 읽자' '다시 읽는 서양철학사'(공저) '철학 개념 용례 사전'(공저) 등이 있다.


심옥숙        심옥숙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기사 목록     프린트 화면     메일로 보내기     뉴스 스크랩    


이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독 자 의 견 제 목이 름작성일


사설 오피니언
무등칼럼 무등데스크
홈페이지 | 회사소개 | 편집규약 및 윤리강령 | 편집 자문위원회 | 독자위원회 규정 | 무등일보 사우회 | 행사안내 | 기자 이메일 | 청소년 보호정책
Copyright ⓒ 1996-2019. 무등일보(MoodeungIlbo) All right reserved. 개인정보취급방침
등록번호:광주아00187등록년월일:2015년 1월8일회장 : 조덕선발행 · 편집인:장인균 61234 광주 북구 제봉로 324 (중흥동, SRB빌딩) (주)SRB무등일보
기사제보,문의메일 : mdilbo@srb.co.kr긴급 대표전화 : 062-606-7760, 017-602-2126, 대표전화:606-7700 팩스번호 : 062)383-8765 광고문의 : 062)606-7772
본 사이트의 게재된 모든 기사의 판권은 본사가 보유하며, 발행인의 사전허가 없이는 기사와 사진의 무단 전재복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