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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본 이희호 여사의 삶
어머니의 꿈 이루겠다던 소녀, 민주·인권·평화 상징으로
입력시간 : 2019. 06.13. 00:00




1927

이희호 여사 5세 때 여동생과 함께 찍은 사진.

1939

세일러복에 단발머리를 한 이화고녀(이화고등여학교) 4학년 때의 모습(맨 오른쪽이 이희호).

1946

서울대 사범대 학생 시절, 연극공연 후 찍은 기념사진(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희호).

1950

서울대 사범대 시절 교복과 교모를 착용하고 찍은 사진.

1956

미국 유학시절 1시간에 1불을 받고 전기코일 감는 일을 했다. 아르바이트, 밀워키의 공장 동료들에게 수복강녕(壽福康寧) 이라는 글씨를 써 선물하고 기념사진을 찍음.

1976

3·1민주구국선언 사건을 계기로 양심수가족협의회를 결성한 구속자 부인들은 남편들의 수인번호를 가슴에 달고 시위에 나서곤 했다.(맨 오른쪽 이희호)

1979

긴급조치9호 해제로 가택연금이 해제됨. (달력에 가택연금일이 표시됨)

1986년

신민당이 ‘대통령 직선제 개헌 천만 서명운동’에 나서자 전두환 정권은 동교동 자택을 봉쇄했다(출처 : 한겨레).

1990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방자치제 실시 이행을 걸고 단식투쟁을 벌이다 이상증세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는 모습.

1994

중국을 방문해서 남편과 만리장성에 오른 모습.

2000

펄퍽 인터내셔널 재단이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받은 모습.

2006

노무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동교동 사저를 방문했다.

2011

남쪽조문단과 함께 북한을 1박2일 일정으로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 빈소(평양 금수산기념궁전)를 찾아 김정은과 인사한 사진(출처 : 한겨레).

2015

서울 서대문 창천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올리는 모습.


이은영        이은영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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