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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우금치의 눈물
입력 : 2019년 07월 10일(수) 00:00


지난 주말, 최근 즐겨 보는 TV드라마 '녹두꽃'(41~42회)에서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우금치(牛金峙) 전투'가 다뤄졌다.

2만여명의 동학농민군이 변변한 무기도 없이 엄청난 화력의 조선·일본 연합군을 향해 돌격했으며 독일제 크루프 대포와 개틀링 기관총 앞에 무수히 쓰러져 갔다. 무엇보다 조선정규군이 일본군의 도움 속에 같은 민족인 농민군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이 그려져 안타까웠다. 참패한 동학군은 뿔뿔이 흩어졌고 조·일연합군은 추격전을 펼치며 학살을 자행했다.

드라마에서는 초록이 무성한 6월의 전투가 됐지만 실제 전투는 겨울(음력 11월)에 벌어졌다. 또 여러 부분에서 고증과 어긋났지만 가슴 아픈 우리 근대사의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우금치는 공주시 금학동과 주미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 공주 남쪽을 지키는 관문이다. 우금치 전투는 고종 31년 동학농민군과 조·일연합군이 이 고개에서 벌인 전투다.

1894년 9월 동학군은 일본군과 친일정권에 항거하기 위해 재봉기했다. 동학 남접의 접주 전봉준은 공주와 수원을 거쳐 서울을 공격하기로 하고 북접과 연합전선을 이뤘다. 이에 2천500여명의 조선군은 200여명의 일본군과 함께 공주에 방어선을 구축했다.

10월23일 이인·효포 등지의 1차 접전에서 패배한 농민군은 전열을 가다듬어 11월초 우금치를 주공격로로, 곰티·곰내·하고개·주미산 쪽을 보조 공격로로 정해 공주를 협공하기로 했다. 농민군이 11월8일 총공격을 시작해 조선군을 우금치로 몰자 조·일연합군은 최신 무기로 무장한채 좌·우측에서 농민군을 협공했다. 패색이 짙어지자 농민군은 공주의 남동쪽으로 후퇴하면서 공주감영을 공격하려 했으나 또다시 대패했다. 전봉준은 계속된 조·일연합군의 추격에 농민군을 해산했고 그해 12월 배반자의 밀고로 순창에서 체포됐다.

최근 일본이 우리 정부의 위안부 협정 파기와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무뢰하고 음흉한 처사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큰 경제 규모에 비해 속은 밴댕이다.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 없이 또다시 세계의 패권국가가 돼가는 모습을 보니 우금치 전투의 장면과 겹치면서 울분이 치민다.

박지경 정치부장 jkpark@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