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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게르니카와 자주독립
입력 : 2019년 08월 06일(화) 18:37


스페인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 4월 26일 나치 독일 공군 편대가 북부도시 게르니카를 폭격한다.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좌파 인민전선을 소비에트 연방이, 우파 프랑코파를 독일과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양상으로 펼쳐졌다.

독일 총통 히틀러는 프랑코 지원을 위해 폭격을 감행했다.

바스크 족 수도인 게르니카는 나치 폭격으로 1천500여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 화가이자 입체파의 선구자인 파블로 피카소는 이 도시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분노해 걸작 ‘게르니카’로 비극과 참상을 고발했다.

피카소는 나치의 만행에 짓밟힌 조국과 국민들의 희생을 숭고한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이후 평생 2만여점의 작품을 생전에 남기며 불굴의 정신과 열정으로 국민의 아픔과 상처를 껴안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피카소의 강인한 정신력에 힘입어 내전과 프랑코 독재로 점철된 어둠의 시기를 이겨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의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말했다.

백범은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을 했고 49년 안두희에 암살되기 전까지 평생을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다.

이봉창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모두 그의 주도로 이뤄졌다.

백범은 자신의 글 ‘나의 소원’에서 언급했듯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해방 이후에도 38선을 오가며 남북통일 완수에 힘쓰다 세상을 떠났다.

백범의 숭고한 업적과 희생은 일제식민지와 6·25를 거쳐 오늘날 이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꽃피운 자양분이 됐다.

그는 불굴의 의지와 정신력으로 조국 광복을 확신했고 생애 마지막날까지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만을 꿈꿨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인해 일본제품 불매운동 등 일본에 대한 분노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피카소와 백범이 그랬던 것처럼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의지와 정신력이다.

당당함과 꿋꿋함, 떳떳함으로 불의와 외세에 맞섰던 백범이 꿈꾼 ‘완전한 자주독립’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최민석 사회부 부장 cms20@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