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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초대석- 뉴욕 무용계 이끄는 세계적 안무가 김영순
“‘영원한 지금’ 채우며 인생 함께 나눠 가요”
삶이 내 춤이고,
내 존재 자체가 무용
어느 비평가의
‘무용을 위해 태어난 사람’
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
한 작품에 돌입하면
입력시간 : 2019. 08.11. 19:33


뉴욕 현대무용을 대표하는 세계적 안무가이자 예술감독인 김영순(65)씨가 그녀의 역작 ‘히어 앤 나우(Here And Now)’를 들고 최근 광주를 찾았다. 그녀는 뉴욕 최고의 공연기관인 BAM 150년 역사상 한국인 최초로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뉴욕 무용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댄스공연상 선정위원회 위원, 덤보페스티벌 감독 등으로 활동하는 등 뉴욕 문화계 메인스트림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감독을 만나 그녀의 무용인생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BAM 역사 최초 한국인

ACC에서 지난 6∼7일 광주시민들을 만난 ‘이터널 나우(Eternal Now 영원한 지금)’는 ‘히어 앤 나우’ 시리즈 네 번째 작품으로 한국 무용계 역사를 새로 쓴 작품이다.

미국 최고 공연예술기관 중 하나인 브루클린음악아카데미(BAM, Brooklyn Academy of Music) 150년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안무가 작품이란 기록을 남겼다. 뉴욕 평단도 ‘BAM 무대를 가장 완벽하게 활용한 작품’이란 찬사 등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이 작품은 BAM이 기획부터 무대올리기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는 육성프로젝트로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9명의 남녀 무용수의 몸의 언어, 동서양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 감각적인 영상이 결합돼 신선한 충격을 전달한다. 최첨단의 몸짓과 동양적 정서와 메시지가 유영하는 그의 작품은 현대무용 메카인 뉴욕 무용계의 찬사를 불러냈다.

“사람들이 지난 일에 애달파하고 다가올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지만 기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며 “‘지금’이라고 하는 것은 텅빈 無이자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채울 수 있는 전부”라고 설명한다. 지금은 그렇게 순간이면서 영원한 것이다.



◆안정 버리고, 꿈 찾아 뉴욕으로

뉴욕은 미국 현대무용의 메카다. 20세기 들어 마사 그레이엄이라는 세기의 예술가가 뉴욕을 무대로 선보이며 미국 현대무용의 메카가 됐다

김영순은 70년대 한국인 최초로 마사 그레이엄을 사사했다.

춤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다섯 살때부터 무용을 시작한 김영순은 재능을 인정받으며 중앙여중과 광주여고를 거쳐 70년대 초 이화여대에 진학했다. 당시 풍토에는 교육자의 길을 비롯해 소위 순탄한 장밋빛 길이 열려있었다.

당시만 해도 생소하던 몸의 언어, 현대무용에서 ‘자유’를 읽어낸 김영순은 한국의 어떤 길에서도 ‘예술’을 생각할 수 없었다. 학생시절부터 유학을 꿈꾼 그녀는 한국에서의 편안한 길을 벗어나 혈혈단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 비자를 얻기 위해 모아둔 유학비를 공연에 모두 쏟아넣고 당시 단돈 24만원을 들고 유학길에 오른 이야기는 지금까지 무용계 전설로 남아있다. 그렇게 뉴욕으로 건너간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인물, 마사 그레이엄의 제자가 돼 그녀를 사사했다.

◆뉴욕 무용계 주류로

“미국와서 오로지 춤 밖에 없었다. 마사 그레이엄이 매개하는 놀라운 무용언어를 익히고 터득하고 깨우치다 보니 10여년이 훌쩍 흘렀다.”

1980년 뉴욕 10대 명문 무용단인 제니퍼 뮬러 현대무용단 오디션에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속단원이 됐다. 1983년엔 작품 ‘삶’(Alive)으로 뉴욕주예술위원회 안무상을 받았다.

1988년, 마침내 자신의 무용단을 창단한다. 화이트웨이브김영순무용단. 화이트 웨이브(White Wave)는 백의민족, 한민족의 정신과 흐름을 전파하겠다는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어린 명칭이다.

실제로 그녀는 동양적인 것, 역량, 감성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다. 미국현대무용계 심장에서 동양인으로 뉴욕 무용을 대표하는 주자로, 뉴욕 무용계 메인스트림에서 각종 위원회 등 공공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에서보다 뉴욕서 더 명성이 자자하다.

뉴욕 무용계의 오스카 상으로 불리는 ‘NewYork Dance and Performanced Award’ 위원으로 5년째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무용단이 뉴욕주로부터 작품에 대한 지원 받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무엇보다 뉴욕 최고의 핫플레이스 중 하나인 덤보(DUMBO)아트페스티벌을 19년째 이어오고 있다.

◆춤은 내 인생

“삶이 내 춤이고, 내 존재 자체가 무용을 위한 것이다. 어느 비평가의 ‘무용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안무가 김영순은 ‘당신에게 춤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가 곧 춤’이라고 답한다.

그녀는 자신을 ‘무용수가 평생에 걸쳐 절정에 이르렀다는 어떤 무용수보다 더 많은 춤을 추고 경험한 몸’이라고 설명한다. ‘춤은 다른 예술과 어떻게 다른가’, ‘춤꾼 김영순, 안무가 김영순, 무대 종합예술가 김영순은 어떻게 춤이라는 언어를 관객과 공유하고 전달할 것인가’.

한 작품에 돌입하면 그녀의 ‘몸’은 24시간 작품에 닿아있다. 무용수들의 동작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영상 한 컷, 조명 하나까지 그녀의 시선과 감각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비로소 관객과 만난다.



◆인생은 나누는 것

그녀는 이번 광주길에 조선대 임지형 교수 제자들과 함께 했다. 단원들 관광을 줄이고 바쁜 시간을 쪼개 학생들과 워크숍을 했다.

“스승은 내가 뭘 모르는지를 일깨워주는 분”이라며 “그 지점이 앞으로 치고 나가는데 있어서 예술이나 학문의 핵심이다”고 말한다. 진짜 중요한게 뭔지, 문제가 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되면 이미 그릇은 준비가 된 셈이고 나머지는 예술가 스스로 큰다는 설명이다.

‘나누고 베푸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녀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반드시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워크숍시간을 마련하는 이유다.



◆그리운 고향

예술도시, 사람을 사랑하는 도시, 그 고향에 그녀가 헌정 공연을 마련한 적이 있다. 도미 20주년을 기념해 뉴욕에서 개인전을 선보였다.

뉴욕 안무가 3명이 함께 안무에 참여해 중국과 홍콩 대만, 한국 등 대규모 동남아 순회공연을했다. 이때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원혼을 달래는 솔로를 선보였다. 이후로도 이전에도 고통이 전이돼 재도전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김영순 감독은 “아름다운 고장에서 너무 멋진 문화적 감수성을 물려받아 감사하다”며 “멋진 무대에서 다시 한번 고향시민들에게 좋은 작품 선보이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조덕진기자 mdeung@srb.co.kr

사진=김영순·매튜 보로윅(Matthew Borow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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