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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칼럼-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입력 : 2019년 08월 12일(월) 13:38


정화희(빛고을고등학교 수석교사)

74주년 광복절이다. 더구나 올해에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에 따른 범국민적 불매운동 속에서 다양한 분노와 경계의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이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며 선배들의 정신을 오늘로 살려내는 것이다. 얼마 전 수업시간 한 학생이 묻는다. ‘불매운동을 펼쳐도 경제대국 일본에 별 영향이 없는 것 아닌가요?’ ‘결국 힘이 센 나라가 이기는 것 아닌가요?’라고. 자연스럽게 학생들끼리 토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토론은 우리 사회 숙제로도 보인다.

교사는 8월 초 한국해양재단 공모 항일 유적지 답사 경험으로 의견을 대신하였다.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의 사진을 바라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초라한 정부청사의 좁은 통로는 광복의 지난한 길처럼 여겨졌다. 이국 땅에서 어두운 산길을 헤매며 목숨 걸고 떨치던 지사들의 기개를 오늘 다시 그려본다.

그리고 홍커우 공원 내 윤봉길 의사 기념관. 특히 순국하실 때의 형틀과 사진 앞에서 느꼈던 숙연함, 2층 영상실에서 일대기를 보시며 우시던 어느 여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거사 당시 그의 나이 25세,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강보에 쌓인 두 아들에게 주었다는 친필 유서는 보는 이들을 모두 눈물짓게 만들었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그렇게 일본 땅에서 1932년 사형을 당하고 쓰레기 하치장에 봉분도 없이 버려진 유해를 찾아 환국한 해는 1946년.

그렇다. 실제로 불매운동은 큰 영향이 없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세계 경제대국 3위로 일컬어진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독립 운동가들이 자신의 임무 완수로 독립이 금세 이루어진다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침체되어가던 독립운동에 윤봉길 의사의 쾌거는 새로운 기폭제가 되었다. 국제적으로도 우리들의 독립 투쟁 노력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중국은 우리를 항일의 동지로 여기고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것처럼 그 시대에 만나는 새로운 결심과 행동들은 상대가 우리를 쉽게 여기지 못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총을 들고 독립 운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이 운동의 의미가 결코 작다고 할 정화희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분업화된 국제 경제 질서 속에서 화이트리스트 국가 배제는 경제 보복이 명료한, 옹졸한 처사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소년들의 이러한 토론과 움직임은 참된 역사를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일본을 배척하고자 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이웃 나라로서 함께 협력하고 공동 번영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자신들의 지난날 과오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단 말인가! 문화적인 나라, 도덕적인 국가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우리의 목표는 이제 항일이 아니다. 극일의 의미를 우리 청소년들과 함께 나눌 일이다.

학창 시절 외쳤던 기미독립선언서의 정신은 오늘날 국제 정세 역학관계 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용감하게 옛 잘못을 고쳐 잡고 참된 이해와 동정에 바탕한 우호적인 새 시대를 마련하는 것이 (중략) 오늘 우리의 한국 독립은 한국 사람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과 번영을 이루게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잘못된 길에 벗어나 동양을 버티고 나갈 이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다하는 것이며”(하략) 그런데도 일본 내 극우세력들은 우리들의 자발적인 이런 노력들을 폄훼하고 냄비근성을 들먹이고 있다하니 상생은 요원하게만 보인다.

다시 토론 중인 우리 학생들과 김 구 선생의 ‘백범일지’ 내용 일부를 나누며 수업을 마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