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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옥매광산, 광복 74주년 그날의 기억 편히 쉬기엔 아직 풀지못한 한 많다
입력 : 2019년 08월 14일(수) 16:39


해남 옥매광산, 강제동원 118명 억울한 수장
진상 규명 없고 일본 회사, 사과도 외면
'국내 강제동원' 이유, 보상·지원도 전무
정부 차원 조사없이 유가족들 '고군분투'
사고 당시 신고된 사망신고서를 살피는 박철희 유족회장
“물에 빠진 사람들이 의지할 게 뭐가 있겠어. 둥둥 떠다니는 나무 판자 뿐이지. 칠흑같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에 파도도 거세 조그만 나무 판자에 매달린 사람들이 하나 둘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거야. 망망대해에서 파도에 잡아먹혀 서서히 물에 빠진 거지. 뒤늦게 나타난 일본 경비정은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만 대충 건져가니 살아난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겠어. 그냥 개죽음 당한거지.”

해남군 문내면과 황산면에 걸쳐있는 옥매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자들이 수년간 노역을 한 곳이다. 1924년 한 일본 기업이 옥매산을 사들인 후 시작된 선조들의 비극은 1945년 118명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청산도 앞바다에서 수장 당하는 가슴 아픈 결말로 마무리됐다.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고 원인과 이후 한마디의 사과조차 없는 일본까지, 죽어서도 설움을 풀지 못한 옥매광산 강제징용자들의 한은 광복 74주년을 맞는 지금도 단단히 응어리져 있다.

◆원인 모를 침몰 후 수장 당해

옥매산 광산은 일본의 아사다화학공업주식회사(淺田化學工業株式會社·아사다화학)가 1924년 개발, 운영하던 광산이다. 군수물자인 명반석과 납석 등을 대량으로 캐내기 위해 이곳을 개발했다. 당시 옥매산 광산에는 최대 1천200명까지 종사할 정도로 많은 인부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인부들로는 주로 옥매산 부근의 신흥, 원문, 삼호, 옥동 등지에 사는 마을사람들이 강제로 징용됐다.

전쟁 끝물이었던 1945년에는 이곳 인부들이 제주도까지 끌려가 2차 강제징용 피해를 입었다. 일제는 그해 4월께 군인들을 동원해 인부 220여명을 데리고 제주도 모슬포 항으로 끌고 갔다. 일제는 이들에게 참호를 파고 방공호를 짓는 노역을 강요했다.

강제노역에 동원된 이들은 해방 이후 8월 20일 어렵게 배를 구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모슬포 항에서 이들을 태우고 떠난 배가 청산도 인근에 이르렀을 때 기관실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기관실에서 발생한 불은 진화되지 못하고 배는 4시간여 동안 바다 위에서 표류하다가 침몰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인부들은 나무판자 등을 붙잡고 버텼지만 머지않아 거센 파도가 집어삼켰다. 8시간 정도 지나고 일본 경비정이 이들을 발견하고 접근했지만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사람만 구조하고 떠나버렸다. 남은 인부들은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날 바다에서 해방의 기쁨을 채 맛보지 못하고 원혼이 된 사람의 수는 현재까지 118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주에서 출발한 인부들 220여명 중 절반 이상이 바다에서 허망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갈길 먼 진상규명…죽어서도 서럽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가장의 허망한 죽음을 접한 유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제기하는 동시에 일본의 사죄를 요구했지만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한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 2012년 옥매광산 진상 규명을 위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출범, 기초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옥매광산 인부 중 제주도로 끌려간 강제징용 피해자의 수가 사망·생존자를 포함해 94명으로 파악됐다. 유족들은 침몰사고 희생자만 118명인 상황에서 위원회 조사가 동떨어졌다며 반발했다.

이처럼 기본적인 사망자조차도 제대로 파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는 생존자의 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 중순께 문내면의 생존자가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생존자는 1명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정보도 부족하고 조사 권한도 없는 유가족들이 나서 사고 피해자들을 찾는 노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유가족들은 정부에 피해자 가족들의 호적을 요구해 자체조사를 진행했다. 피해자 유족들이 제출한 사망신고서를 중심으로 살핀 것이다. 사망신고서의 ‘청산도 인근 앞바다에서 배 사고로 침몰 후 사망’이라는 글귀를 중심으로 조사를 이어갔지만 파악마저도 녹록지 않다.



옥매광산 인부들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지만 국내에서 동원된 까닭에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로 분류돼 있는 상태다.

국가의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에게 1명당 2천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생존자에게는 연간 80만원의 의료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보상받을 근거가 없는 것이다. 여기에, 지속적인 피해보상 요구에도 일본 기업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시하고 있다.

◆억울한 넋 향한 추모 올해도

유족회는 2017년 9월 6일 인부들이 배를 타고 떠났던 삼호 옥선창 앞에 5.5m 높이 추모비를 세웠다. ‘임이여 영원하라’ 라는 글귀가 써진 추모비는 배 모양에 희생된 광부를 상징하는 118개의 조형물로 꾸며져 있다.

추모비 건립에 앞서 2016년 해남 군민 한명이 1만원씩을 내는 성금모금행사를 진행했다. 1천200여 명의 군민이 모은 성금과 각 기관단체에서 보내온 1천400여만 원의 기금이 모여 현재 자리에 추모비가 세워질 수 있었다. 해남 군민들과 유족회의 힘겨운 노력으로 황산면 옥매광산과 인근 관련 사적지들이 2017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선정하는 ‘올해의 꼭 지켜야 할 자연·문화유산’에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도 3년째 이곳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16일 삼호 옥선창에서 진행되는 추모제는 제사와 함께 추모식, 헌화, 살풀이 공연 순으로 진행된다.

옥매광산 희생자 유족회 박철희(65) 회장은 “광복과 함께 참사 74주년을 맞는 올해지만 여전히 진상규명을 위해 나아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며 “관련 법 개정을 통한 숨진 인부들의 명예회복은 물론 사고 원인과 사상자 수를 밝히는 진상규명, 일본 기업의 사죄가 이뤄져야 희생자들의 넋이 위로될 것이다”고 밝혔다.

이영주기자 lyj2578@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