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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평화탐방단 중국 동북3성을 가다<중>청나라의 탯줄 ‘심양고궁’
입력 : 2019년 09월 17일(화) 16:43


중국 요녕성 심양과 단동 등 이른부 북·중 접경지대는 ‘시간이 멈춘 땅’이라 불린다.

중국이 1949년 중국 공산화를 계기로 동북 3성을 지배하면서 냉전 고착과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한반도 분단의 긴장과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상편에 언급했던 단동 철교는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 한반도 진입을 막기 위한 미군 폭격으로 반토막이 난 채 상징적 유물처럼 자리하고 있다.

‘심양·단동팀’은 일정 3일째인 8일 오전 단동을 뒤로 하고 심양으로 향했다.

옛부터 ‘만주벌판’으로 불렸던 동북 3성은 광활한 평야와 그만그만한 산들 사이로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진다.

버스를 타고 3시간 여를 달리는 내내 ‘만주벌판’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날 오후 1시께 심양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9·18기념관’이다.

일본은 대륙 침략이 본격화한 1931년 만주지역 장악을 휘해 이른바 ‘만주사변’을 일으킨다.

중국 측에서는 이를 ‘9·18사변’이라 명명했다.

만주사변은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이 류타오거우에서 스스로 만주철도 선로를 폭파하고 중국 측 소행이라며 이를 명분으로 북만주 일대에 대한 군사행동을 시작했다.

일본은 ‘만주사변’ 이후 만주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부의를 최고 수반으로 한 허수아비 국가 ‘만주국’을 세웠다.

중국은 류타오거우 사건이 일어난 그 자리에 ‘9·18 만주사변 기념관’을 세운 후 지난 99년 9월 18일 박물관을 세웠다.

박물관 입구에는 ‘물망국치’(나라의 치욕을 영원히 잊지 않음)이라는 글이 새겨진 종을 먼저 만날 수 있다.

이 종은 중국인들에게 ‘경세의 종’으로 불리며 해마다 만주사변이 일어난 9월 18일 14번 울려 그날의 비극과 참상을 되새긴다.

‘심양 ·단동팀’ 학생들은 기념관을 둘러본 후 만주사변을 일으킨 일본의 만행을 확인한 후 알지 못했던 역사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광주 풍암고 2학년 김수현양은 “역사책으로만 배웠던 일본의 모습을 보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일본이 우리나라에만 못 된 짓을 한 줄 알았는데 중국인들도 적지 않은 고통을 겪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청나라의 탯줄 ‘심양고궁’



명나라가 중국 대륙을 지배했던 16세기까지 동북 3성은 사실상 ‘공한지’였다.

쉽게 말하면 주인 없는 땅이었다.

중원 왕조가 베이징을 중심으로 대륙 경영에 집중할 뿐 한족 인구도 적었고 동북 3성에 대한 실효적 지배력이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세기 들어 만주의 정세가 급변한다.

이 일대에 터를 잡고 살아온 여진족은 민족 명칭을 만주족으로 바꾸고 ‘후금’을 세웠다.

초대 황제는 여진족을 통일한 누르하치였다.

후금은 이후 국명을 ‘청’으로 바꾸고 명나라와 조선이 주도했던 동북아 일대의 강자로 떠올랐다.

심양은 만주족의 발원지이자 후금 수도였으며 이를 상징하는 유적이 ‘심양고궁’이다.

‘심양고궁’은 청나라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와 2대 황제 태종인 홍타이치가 선양에 건립한 궁으로 1625년에 착공,1636년 완공됐다. 면적은 약 6만㎡이며, 72만㎡인 자금성에 비하면 12배 이상이나 규모가 작다.

수도의 황궁으로 건립됐으나 3대 황제 성종 때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황제가 동북 지역을 순회할 때 머무는 곳으로 활용됐다.

1955년 선양고궁박물관이 됐고, 1961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후 2004년 베이징 고궁박물원에 포함,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궁전 내부는 크게 동로·중로·서로로 나뉘며, 모두 90채의 건물과 20개의 정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동로에는 황제와 신하들이 정사를 논하던 대정전(大政殿)이 있고, 대정전 앞에 좌우로 각각 5개의 정각이 있는데 이를 십왕정(十王亭)이라 한다. 전체적으로 전통과 규칙을 중시하는 한족의 건축물과는 달리, 북방 기마민족으로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한 만주족의 특성이 건축기법에도 드러나 있다.

‘심양고궁’은 만주를 기반으로 중국대륙을 석권한 만주족과 청나라의 화려하고 강성했던 역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심양·단동팀’은 거대한 심양고궁을 뒤로 하고 심양역에서 송강하 심야열차를 타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겨레의 허파’ 백두산

심야열차는 10시간 여를 달려 9일 오전 송강하역에 도착했다.

‘심양·단동팀’은 송강하역에서 버스에 몸을 싣고 백두산 서파로 이동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북한에 걸쳐 있는 중국 동부 최고의 산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 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중국측에서는 만주족이 명명한 ‘장백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백두산 은 천혜의 절경과 생태를 갖춘 명산 중 명산이다.

‘백두산호랑이’를 비롯한 희귀 야생동물과 식물들이 자라 국가급 보호구역에 속한다.

전체 면적은 30% 가량이 중국측에, 70% 가량이 북한 영토에 속한다.

아쉽게도 북한쪽 영토는 철저한 통제로 갈 수가 없었다.

백두산 풍경 중 백미는 ‘천지’다.

천지는 화산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천200m 높이에 자리해 있으며 백두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형으로 호수 주위 길이만 13km, 평균 수심이 200m가 넘고 일년 내내 안개와 운무가 가득해 신비로움을 준다.

‘천지’는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1시간여 계단으로 정비된 등산로를 올라 천지를 본 ‘심양·단동팀’은 모두가 혀를 내두르고 연이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백두산은 산 자체가 주는 장엄한 규모와 감동도 넘쳐나지만 우리 민족이라면 오르는 그 자체만으로 희열을 가져다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임이화 인솔교사는 “백두산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며 “짧은 시간 머무르는 게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하산했다”고 말했다.

‘심양·단동팀’은 3시간 여 산행을 마치고 백두산에 오른 감회를 뒤로 한 채 ‘조선족 자치구’가 있는 길림성 연길로 다음 여정을 옮겼다.

중국 심양·연변 최민석기자 cms20@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