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사회적 불이익 양산하는 친생자 추정, 시대 변화 따라야

입력 2018.11.27. 15:17 수정 2018.11.27. 15:21 댓글 0개
오광표 법조칼럼 법률사무소 미래/변호사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단골 소재 중 하나가 불륜을 통한 친자 확인 소동이다. 수십년 자신을 낳아준 부모인 줄 알고 살다가 친부모가 아닌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날벼락 같은 현실이 많이 나온다. 실제도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상황을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된다. 요즘에도 “친자 확인을 해결 하는 현명한 방법이 뭔가”하는 의뢰도 많다. 확실히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이다.

필자를 찾은 A씨는 전 남편인 B와 혼인기간 중 C와 불륜을 저질러 D를 낳게 되었다. 전 남편인 B는 자신의 아이인줄 알고 친자로 출생신고를 하여 키우던 중 A와 이혼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 불륜을 저지른 A와 C는 혼인을 하여 D를 자신들의 친자로 변경하고 싶다고 하면서 가능한지 물어 왔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전 남편의 도움 없이는 친자 변경은 불가능하다.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 추정을 받을 경우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없고 친생부인 소에 의해서만 친자관계를 부인할 수 있다. 그런데 친생부인의 소는 부나 모만 제기할 수 있어 위 경우에는 전 남편이 제기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전 남편의 도움 없이는 친자식이라 해도 현재로서는 인정받을 방법이 없다.

친생부인의 소는 우리나라 민법 제정 당시부터 도입됐으니 전통이 깊다. 당시에는 친부에 관한 정확한 감별이 쉽지 않았고 처의 부정행위가 드물었던 시대라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 시대적 환경을 반영해 조속히 부자관계를 확정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양육하는 자식 복리를 우선 하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적 친자감정기술의 발달로 혈액형 또는 유전자형의 배치에 대한 감정을 통해 혈연관계를 비교적 쉽게 판단할 수 있고 검사도 간단해 부부의 내밀한 사적 비밀을 침해하지 않고도 혈연관계 유무를 판정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친자감정을 통해 친자 관계가 아님이 확실한 데도 친자 추정을 받는 경우 실제 혈연관계로 변경할 수 없는 것은 시대 상황과 너무 맞지 않다. 이렇게 될 경우 자식의 복리에도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최근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해 항소심에서 새로운 판결이 나와 주목을 끈다. 부부의 혼인기간 중 출생해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 받는 경우라도 혼인관계가 이미 파탄나고 남편과 자녀 사이의 관계가 단절됐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검사 등으로 혈연관계가 없음이 명확한 때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통해 부자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온 것이다.

유전자 검사 등으로 간단히 친자관계를 확인할 수 있고, 정조보다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중요해지는 시대적 변화를 고려해 친생자 추정 규정도 탄력적으로 해석·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요구다. 이같은 시대적 흐름에 맞추고 혈연진실주의에 부합하는 법적인 부자관계의 정립을 원하는 사람에게 그 길을 열어준 판결이라 주목 된다.

앞서 1심은 대법원 판례의 법리에 따라 친생자 추정을 받는 경우에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며 소를 부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제 공은 대법원에게로 넘어간 듯하다. 대법원에서 과거 법리를 그대로 인정할 경우 새로운 판결은 쓸모가 없게 된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을 인정해 대법원이 법리를 변경할 경우 현대판 홍길동들에게 진정한 혈연관계를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진다.

부와 자 사이에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유대관계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친생자 추정을 받는다는 이유로 가족관계등록부 등을 수정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부자관계를 복원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 더욱이 진실한 혈연관계에 부합하는 법적인 부자관계의 정립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인륜을 저버리게 하는 법 감정으로 일반인의 법 감정과도 거리가 멀다.

필자는 부자가 같이 살면서 가족관계등록부상 남남인 사람들의 고통을 많이 목격한다. 특히 아직 미성년은 그로인한 사회적 불이익이 심각한 지경이다. 사회적 폐해나 비용 또한 심각하다. 이런 고통을 헤아려 대법원은 친생자 추정이 배제되는 예외사유를 보다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시대가 변하는 데 법만 수많은 피해자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친생자 추정! 이제는 시대 변화를 따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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