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악의 평범함을 깨달아야 제2의 n번방 피해 막는다

입력 2020.06.16. 10:39 수정 2020.06.16. 19:31 댓글 0개
조선희 법조칼럼 이광원 법률사무소 변호사

n번방 사건을 지켜보면서 두 번 놀라게 된다. 초등학교 정도의 어린 학생들에게 온갖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잔인함에 놀라고 포토라인에 선 청년들의 평범한 모습에서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조주빈 일당은 미성년자를 포함 70여명의 여성들에게 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악마 짓을 '노예 놀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렀지만 그들은 결코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얼굴이 공개 됐을 때 독자들은 크게 놀랐을 것이다.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성적 가학행위를 한 범죄자들의 실제 모습은 하나같이 솜털이 보송보송한 고등학생, 수줍음 많은 청년 또는 대학에서 한창 공부하는 삼촌 같은 평범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서도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평범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도 몇 년 전 남자 대학생이 초등2학년인 여학생과 채팅을 하다가 몸캠을 요구했고, 초등학생 피해자를 협박해 몸캠을 받고 성적 만족을 취하는 사건을 접한바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대해 성적 착취를 한 가해자는 서글 서글한 모습의 인상 좋은 대학생이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저런 선량한 모습을 한 대학생이 어린 학생에게 어떻게 그토록 악의적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n번방 사건에서 보듯 최근 디지털 성범죄는 몸에 문신을 하거나 험악한 인상을 가진 흉악범들이 저지르지 않는다. PC방이나 가정집에서 본 듯한 청년이나 소년들이 죄의식 없이 악마적 유희를 즐기고 있다. 관전자라 불리는 n번방 사건 유료회원은 26만 명에 달한다. 전체인구수 5천만중 26만 명이니 성인 남자 40~50명중 한 명꼴로 인스타 그램 관전자로 참여해 디지털 성범죄를 부추긴 셈이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을 관찰한 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한나 아렌트는 수많은 인간을 죽이고도 죄의식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는 루돌프 아이히만의 행동을 '악의 평범성'으로 설명한다.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다"라고 강변하면서, 집에서는 자상한 아버지였고 정다운 이웃의 이중적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악의 평범성은 우리 스스로가 성찰하지 않고 경계를 늦추는 순간 보통사람이 악마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n번방 사건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모습을 한 수십만 관전자들이 n번방을 떠도는 한, 사태가 잠잠해지면 언제든 새로운 n번방으로 모습을 바꿔 다시 출몰할 수 있다.

인간의 내면에는 다양한 형태의 범죄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어떠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 어린 학생의 처지를 생각해보는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절망적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PC방이나 골방에서 미성년자 성착취 영상물을 찾고 있다면, 그 자체가 악마짓 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관전자들 본인이 나약한 소녀의 삶을 망가뜨리는 범죄의 공범자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가 악의 평범함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공동체를 위협할 제2, 제3의 n번방 출현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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