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계좌명의신탁으로 빼돌린 물품 대금 되돌려 받으려면

입력 2021.02.16. 15:32 수정 2021.02.16. 19:37 댓글 0개
김선남 법조칼럼 변호사(법률사무소 미래)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빌려준 돈이나 공급한 물품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필자를 찾은 자영업자 A씨는 광주 한 병원에 식자재 2억 원어치를 납품하고도 받을 길이 없어 발만 구르고 있었다.

납품 대금을 받으려고 하니 병원은 이미 파산상태였고 병원 앞으로 된 재산도 없을 뿐 아니라 병원장 B씨도 개인 부동산이나 통장계좌가 없는 관계로 받을 길이 막연한 상태였다. 그런 병원장은 오래전부터 딸 명의 은행통장 3개를 이용해 돈거래를 해왔고 예금을 해놓은 상태였다.

이런 경우 자영업자 A씨는 병원장 B씨로부터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간단치는 않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금이 명의신탁된 경우로 보아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부동산 명의신탁은 들어보았지만 예금 명의신탁은 다소 생소할 것이다. 예금 명의신탁의 경우 수탁자가 내점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좌가 개설된 경우에는 금융실명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누가 민사상 예금주인가 하는 문제는 법원이 판단할 사항이다. 이상태서 사법기관이 판단할 때 그 기준이 어떻게 될지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금융실명제하에서 출연자 또는 예금계약체결행위자와 명의자가 다른 예금계약의 예금주를 누구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대법원판례는 두 단계를 거쳐 진화했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보아야 하지만, 특별한 사정으로 예금의 출연자와 금융기관 사이에 예금명의인이 아닌 출연자에게 예금반환채권을 귀속시키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출연자를 예금주로 하는 금융거래계약이 성립 된다'고 했다.

그러던 대법원은 2005년 6월 24일 판례를 변경해 '금융기관과의 사이에 출연자 또는 예금계약체결행위자를 예금주로 하기로 하는 명시적인 약정이 있는 경우만 출연자 또는 예금계약체결행위자를 예금주로 보아야 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2009년3월19일 선고, 2008다45828 전원합의체)

쉽게 말해 통장을 빌려준 사람이 예금주이고 통장을 빌려 사용하는 사람이 출연자인데 예금주 명의신탁이 인정되는 경우 어떤 방법으로 채무자인 명의신탁자(예금주)로부터 돈을 되돌려 받을 것인가가 문제다. 우선 예금주 명의를 신탁한 경우 출연자와 예금주인 명의인 사이의 명의신탁약정상 예금주는 출연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에는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반환채권을 출연자에게 양도할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때 출연자는 명의신탁을 해지하면서 명의인에 대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예금채권의 양도를 청구하고 아울러 금융기관에 대한 양도통지 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채권자는 명의 신탁자인 채무자를 대신해 채권양도 및 양도통지 청구도 가능하다.

예금주 명의신탁계좌에서 예금이 인출된 경우에는 원상회복이 어려우므로 가액배상만 문제되는데 원상회복의 범위와 증명책임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예금명의자인 수탁자(예금주)에게 신탁자(출연자)가 예금을 지배·관리했다는 입증책임이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통장 명의자인 예금주는 출연자가 통장의 돈을 사용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돈을 반환할 책임을 진다고 보면 된다.

다만, 법원은 송금행위가 증여라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타인명의 계좌로 송금한 것이 증여가 되기 위해서는 객관적으로 명확한 증여 의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고, 입증책임 또한 취소를 주장하는 채권자가 부담한다고 정리 한다.

위 사례에서 보듯 자영업자 A씨는 채무자인 병원장 B와 딸 사이에 예금주명의신탁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무자력인 채무자인 병원장 B가 딸 계좌에 이 사건 대금을 송금한 것은 사해행위에 해당한다. 그런 이유로 위 송금행위에 관한 예금주명의신탁약정은 사해행위로 취소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물품 대금은 거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다. 한 가족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처음 겪어본 막막한 현실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기 까지 한다. 그렇지만 포기할 상황이 아니다. 남의 재산을 노리는 악덕 명의신탁 업주에게는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아서라도 해결에 나서야 한다. 포기하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각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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